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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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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한국어의 시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고려대 정연주 선생님 강의를 정리했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시제

시제(tense)란 절이나 문장이 나타내는 사태가 발생한 시간적 위치를 문법적 수단을 통해 나타난 것을 가리킵니다. 사태의 발생 시점을 나타내는 언어적 수단 가운데는 어휘적 수단도 있고 문법적 수단도 있을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문법적 수단에 의한 것만을 시제라고 합니다.

시제 언어란 과거 사태와 비(非) 과거 사태가 필수적으로 구분되어 쓰이고, 이 역할을 담당하는 시제 형태소가 있는 언어를 뜻합니다. 시제 언어는 다음과 같이 두 개 유형이 있습니다.

  • 2분법 : 과거/비과거 또는 비미래/미래
  • 3분법 : 과거/현재/미래

2분법의 대표적인 사례는 과거 대 비과거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어입니다. 영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과거-현재-미래의 3분적 시제 체계를 갖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편 세계 언어들은 미래보다는 과거의 의미 영역을 세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먼 과거’, ‘가까운 과거’ 등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한국어의 시제 체계

현대 한국어는 시제 언어입니다. 과거와 비과거의 구별이 다음과 같이 거의 필수적으로 표시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비과거
-었- -는-
-었- -Ø-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어는 과거-현재-미래의 3분 체계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 표와 같습니다.

한국어의 과거, 현재, 미래시제 등을 차례대로 살펴 보겠습니다.

과거 시제

한국어 과거 시제는 ‘-었-‘과 ‘-었었-‘으로 실현됩니다.

-었-

‘-었-‘는 한국어에서 대표적인 과거 표시 형태소입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나는 어제 밥을 먹다.

‘-었-‘결과 상태 지속을 나타내던 ‘-어 잇-‘이 문법화한 형태소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동사와 ‘-었-‘이 결합하면 과거가 아니라 결과 상태 지속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다음 예문을 보겠습니다.

꽃이 피다.

위 예문에서 ‘피다’는 끝(end)이 있는 행위를 가리키는 동사입니다. 개화(開花)는 특정 시점에만 이뤄지는 사건으로 끝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부류의 동사를 유계(telic) 동사라고 합니다. 한국어 유계동사의 예에는 웃다, 싸우다, (바람이)불다, 걷다, 뛰다 등이 있습니다.

‘-었-‘은 유계동사와 결합하면 결과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위 예문의 경우 꽃이 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로 ‘-었-‘이 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었-‘과 유계동사가 결합한다고 무조건 결과 상태 지속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예문을 보겠습니다.

(1) 진이는 결혼했으니까 잊어버려. (결과 상태 지속)

(2) 진이는 올림픽공원에서 결혼했다. (과거)

(1)의 경우 유부녀인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로, (2)의 경우 결혼식이라는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다는 취지로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었-‘은 특이하게 미래의 일에 쓰이기도 합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을 이미 끝난 일처럼 말하는 용법으로 사용됩니다. 예문과 같습니다.

너 이제 장가는 다 갔다.

너 내일 죽었다.

-었었-

‘-었었-‘ 또한 과거 표시 형태소입니다. 하지만 ‘-었-‘과는 달리 말하는 시점(발화시)에는 성립하지 않는 사건, 즉 단절된 과거를 나타냅니다. 예문과 같습니다.

그 시, 고등학교 때는 외웠었다. (이제는 다 잊어버렸다)

진이는 어렸을 때 예뻤었다. (지금은 별로 안 예쁘다)

‘-었었-‘은 과거 기준점보다 앞선 시점에 일어난 사태, 즉 과거에서의 과거(대과거)를 나타내는 데에도 쓰입니다. 다음 예문을 보겠습니다.

진이는 9시에야 학교에 도착했다. 집에서 7시에 떠났었다.

최근에는 ‘-었었-‘이 자주 쓰이면서 ‘-었-‘과 비교해 ‘-었었-‘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 기능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일종의 의미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난 것이지요. 자동차 비상깜빡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면서 비상깜빡이를 켰다고 emergency라고 인지하는 운전자들이 적어진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현재 시제

한국어의 현재 시제는 환경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합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는다 : 서술어 동사, 종결어미 ‘-다’, 자음 뒤 (예) 먹는다
  • -ㄴ다 : 서술어 동사, 종결어미 ‘-다’, 모음 뒤 (예) 간다
  • Ø : 종결어미가 ‘-거든’, ‘-어’ 등일 때 (예) 먹어, 먹거든
  • -는구나 : 서술어 동사, 종결어미 ‘-구나’ (예) 먹는구나, 가는구나

예정된 미래나 확실한 미래는 현재가 아니지만 현재 시제를 씁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나는 내일 떠난다.

시간의 제한에 제약을 받지 않는 보편적 사실을 진술할 때에도 현재 시제가 사용됩니다.

지구는 태양을 돈다.

진이는 커피 전문점을 운영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현장감을 강조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케네디는 중대 발표를 결심한다.

미래 시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한국어의 미래 시제는 ‘-을 것이-‘와 ‘-겠-‘으로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추측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겠-‘은 화자가 내면화하지 않은 정보에 기반을 둔 추측, 혹은 현장 지각에 따른 화자의 추측, 화자 자신의 지각력을 바탕으로 한 추측을 나타냅니다. 다음 예문은 기상 캐스터가 구름 사진 등을 판독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내일은 남부 지방에 걸쳐 있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남부 지방에 많은 비가 내리겠습니다.

‘-을 것이-‘는 내면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추측, 화자 또는 타인의 지식이나 믿음에 바탕을 둔 화자의 추측을 나타냅니다. 다음 예문은 일기예보에 관한 보도를 듣고 내일 날씨에 관한 지식을 획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추측을 한 일반인의 말입니다.

내일은 비가 올 거야.

다음 상황에서는 각각 ‘-겠-‘, ‘-을 것이-‘을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테이블 끝에서 떨어질락 말락 하고 있는 공을 보고) {떨어지겠다/??떨어질 것이다}.

(긴 테이블 한 가운데에서 천천히 굴러가고 있는 공의 속도 등을 바탕으로 추측건대) 공은 테이블에서 {?떨어지겠다/떨어질 것이다}.

상대시제

시제는 일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어떤 사건의 시간적 전후 관계를 표시하는 문법범주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해드린 시제 개념에서 기준이 되는 ‘일정한 시점’은 말하는 시점(발화시)이었습니다. 다음 예문을 보겠습니다.

동생이 배가 아프다고 투덜거렸어요.

냇물에서 수영하는 아이들을 보았어요.

위 예문에서 아픈 시점, 수영을 한 시점은 발화시를 기준으로 과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그 형태를 보면 현재 시제로 쓰였습니다. 정동사절(종결어미가 붙은 서술어)의 시제가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위 예문 모두 해당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과거 기준으로 현재’, 즉 과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발화시가 아닌 다른 시점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시제를 상대시제라고 합니다. 상대시제는 복문을 분석할 때 유용합니다. 아래 예문에서 ‘노래하고’와 ‘노는’의 발화시 기준 절대시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 같이 노래하고 춤춘다 : 현재의 현재=현재

다 같이 노래하고 춤추었다 : 과거의 현재=과거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을 본다 : 현재의 현재=현재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 과거의 현재=과거

하지만 복문에서 상대시제가 일률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다음 예문을 보겠습니다.

(가) 내가 지금 읽는 책을 아빠가 좋아했다.

(나) 진이는 책을 읽었고 민이는 음악을 들었다.

기존 상대시제에 기반해 (가)를 분석하면 ‘읽은’의 발화시 기준 절대시제는 ‘과거의 현재’, 즉 과거가 됩니다. 하지만 문장을 자세히 보면 내가 책을 읽는 사건은 현재에 일어난 것입니다. (나)의 경우 기존 상대시제에 기반해 ‘읽은’의 발화시 기준 절대시제를 따져보면 ‘과거의 과거’, 즉 대과거가 됩니다. 하지만 진이가 책을 읽는 사건은 그저 과거에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어미의 종류에 따라 ‘-었-‘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거나 실현되지 않아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다) 진이는 집에 {가자마자/*갔자마자} 숙제부터 했다.

(라) 진이는 춤을 {*추나/추었으나} 민이는 노래를 불렀다.

(다)의 경우 ‘가다’라는 사건은 상대시제로 해석해야 합니다(과거의 현재=과거). (라)의 경우 ‘추다’라는 사건은 발화시 기준 절대시제로 해석해야 합니다(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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