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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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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부산은 나에게 비즈니스(business) 도시로 남아있다. 매번 출장으로 다녀갔다. 반나절도 못되는 시간만 부산에 있다가 할 일만 마치고 바로 상경하고는 했다. KTX나 비행기를 탔지만 이동하는 시간마저도 아까웠다. 기내에서 객차에서도 키보드를 두드리곤 했다. 이번엔 크게 마음을 먹고 무궁화호 열차표를 끊었다. 휴가 때만이라도 ‘철저히 느린 삶’을 살겠노라 다짐한 것이다. 그랬더니 평소엔 그냥 스쳤던 이런저런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02. 무궁화호 승객 표를 검사하고 승하차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분들의 정식직함은 과장도, 차장도, 부장도, 상무도 아닌 ‘여객전무‘다. 모르긴 몰라도 KTX나 비행기에서 여객서비스를 하시는 분들보다 훨씬 직급이 높을 것이다. 콧대도 무척 세보였다. 객차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리고 빠져나갈 때 절대 머리 숙여 인사하는 법이 없다. 하긴 KTX 승무원들이 다른 객차로 갈 때 일부러 돌아서서 까딱 고개 숙이는 제스처가 영혼없는 매너라는 생각이 예전부터 들긴 했다.

#03. 무궁화호는 느리다. 서울-용산-영등포-수원-오산-평택-천안-조치원-신탄진-대전-옥천-영동-김천-구미-왜관-대구-동대구-밀양-구포-부산. 다 선다. 달리는 시간보다 서있는 시간이 더 길지 않을까. 최고속도는 120km/h이지만 체감상 100km/h 남짓의 속도로 운행하는 것 같다. 이 덕분에 한여름 아름다운 강과 들판의 모습을 시야에 온전히 담을 수 있다. KTX 탔을 때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04. 부산역 7번출구로 나와 걷다가 대로 안쪽으로 두세블럭을 가면 ‘불백(불고기백반)’을 파는 식당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처음엔 운전기사 분들을 위한 기사식당이었다고 하는데 ‘무한도전’ 같은 매스컴을 탄 이후로 손님은 주로 관광객들인 듯하다. 1인분에 7000원짜리 백반을 시키면 이런저런 반찬에 새빨간 양념이 된 불고기가 지글지글하니 나온다. 한그릇 뚝딱, 해치우는데 10분밖에 안 걸린 것 같다. 맛도 양도 가격도 다 좋은데 너무 짜다.

#05. 부산 초량역과 부산역을 지나 중앙역으로 뻗어있는 중앙대로 변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건물 맞은편엔 변호사 ‘곽규택’의 사무실이 있다. 그런데 간판이 참 특이하다. 한쪽 벽면에 큼직하게 그리고 나란히 ‘변호사 곽규택’과 ‘영화감독 곽경택’이라고 썼다. 이 사무실 곽변이 두 명인가 싶을 정도로 근엄하고 진지하게. 시골(?)에서 나고 자란 두 형제가 부산을 소재로 한 영화로 대박을 치고,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으니 고향에 돌아와서는 주변에 자랑할 만 할 것이다.

#06. 식사 후 목적지는 영도(影島)로 정했다. 초량역 3번 출구 버스정류장에서 85번 버스를 타면 부산역과 남포동역을 지나 영도대교를 건너 영도로 갈 수 있다. 영도대교에서 바라보는 부산항과 시내 모습은 많은 배와 접안시설로 신산스럽지만 삶의 박진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영도 안에 들어선 버스는 육중한 무게를 견디며 동동동 언덕을 향한다. 6.25 피난시절 설움을 그대로 안고 있는 영도는 제법 높은 언덕배기에까지 주택이 들어차 있다.

#07. 영도에는 부산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션뷰 카페 ‘블루즈홀릭’이 있다. 영도 서쪽 해안을 감싸도는 ‘절영로’에 있는데 사색을 즐길 수 있어 일품이다. 그런데 휴가 때만이라도 서울처럼 북적거리는 부산 바닷가엔 가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저녁 무렵에는 광안리에 가야할 것 같다.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 해온 친구들과 바다내음을 마시며 술잔을 부딪힐 생각이다. 바다에 술에 취하다보면 부산스러움 따위 신경도 쓰이지 않을 것이다.

2017. 8. 11. 부산 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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