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지형
12 Aug 2017 | start
휴가 기간 ‘그해 역사가 바뀌다(주경철 지음)’를 읽다가 눈에 띄는 구절이 있어서 정리 용도로 그대로 인용해봤다. ICBM과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한 김정은이 괌 기지를 날리겠다고 위협하고, 트럼프가 북에 대해 괌을 공격하면 누구도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날거라 맞불을 놓고, 중국은 그저 미국 세력의 확장을 막으려고 팔짱끼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지형을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에서다. 2017. 8. 11. 부산
강조 표시는 인용자 주, 저작권 등 문제시 자삭하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왜군은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화력에다 사무라이가 함께 운영되는 복합군대였습니다. 그때 들어온 병력 16만명 중 4분의 1이 총을 소지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 군대는 지역별로 영주가 군대를 모아서 제공했는데, 영주가 부자면 총을 사용하는 사수의 비중이 높고 가난하면 사무라이의 비중이 높은 식이지요.
여기에서 16만명이라는 수치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말 엄청난 의미를 가진 병력입니다. 한번 비교해봅시다. 거의 같은 시기에 있었던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전투로는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無敵艦隊)의 영국 공격을 들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Felipe II)가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를 징치하겠다고 군사를 총집합해 무적함대에 승선시킨 뒤 영국으로 파송했지요. 이때 스페인군의 인원이 3만 명이 안 됩니다. 이렇듯 유럽 역사를 뒤흔든 중요한 전투에 투입된 인원도 3만 명이 안 되는데 일본군 16만 명이 조선 땅에 들어왔다는 것은 보통 전투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명운이 갈린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놓고 볼 때 어쨌든 우리가 일본군을 격퇴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맨날 조선 군대가 형편없이 패퇴하고 국왕이 도주했다는 식의 이미지만 떠올리지만 세계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엄청난 대군을 물리친 성과는 결코 무시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산속에 있던 스님들까지도 뛰쳐나와 게릴라전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명나라에서도 원군(援軍)을 보냈는데, 원군을 보낸 이유는 단지 조선에 대한 의리 때문만이 아닙니다. 만약 저 막강한 일본 군사력이 조선을 정복한 후 보급로를 확보하여 밀고 올라간다면 명나라의 운명도 장담 못 하는 실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한번 되새겨봅시다. 일본이라는 강력한 해양세력이 한반도를 통해서 대륙으로 들어가려는 힘이 한반도에서 굴절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 사례는 없을까요? 그러니까 강력한 대륙 세력이 해양으로 들어가려다가 한반도에서 굴절된 경우 말입니다. 몽골 사례를 들 수 있겠네요. 상대적으로 비교해볼 때 몽골군은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라고 이야기합니다. 몽골이 서쪽으로 진격해 들어갈 때의 기세를 보면 정말 엄청났습니다. 무엇보다 상대편을 철저히 파괴할 때는 차마 말하기 힘든 지독하게 잔인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컨대 러시아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 몽골이 보인 행태는 이렇습니다. 상대방이 항복을 안 하고 계속 버티다가 성이 함락된 경우, 저녁에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을 땅에 엎드리게 한 후 그 위에 판자를 깝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몽골군은 밤새 술을 마시고 놉니다. 승자는 위에서 술을 마시고 패자는 그 아래에서 압사당하는 것이지요. 아침에 판다를 걷어보면 모든 사람이 죽어 있습니다. 그러고는 이 지역에 불을 질러 모든 것을 다 태워 없애버리고 떠납니다. 자신들에게 저항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적으로 보여서, 다음 번 적들이 그 소식을 듣고 아예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겠지요.
이토록 강한 세력이 고려로 진격해옵니다. 우리는 오래 버티고 항전하지만 결국 몽골에게 사위의 나라가 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지배를 받기에 이릅니다. 그 후 몽골은 고려를 움직여 해군을 만들어서 일본을 징벌하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공격은 실패로 끝납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태풍 때문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카미카제(神風, 원래 13세기 몽골의 일본 침공시 몽골 함대를 침몰시킨 태풍을 뜻하나,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렸던 일본군 자살 특공대를 지칭하게 되었다) 덕분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곧 신이 도왔다는 의미입니다. 하여튼 일본으로서는 그 강력한 침략군을 태풍이 막아주었으니 천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 생각을 바꿔서 이렇게 질문해보지요. 그런 엄청난 세계사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실패의 원인을 태풍이라고 한다면 너무 단순한 설명 아닐까요? 태풍이 실제 실패의 원인이었다면, 몇 년 쉬어 힘을 모았다가 다시 선단을 만들어서 이번에는 태풍이 안 부는 계절에 공략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일본에서는 다시 몽골이 쳐들어올까봐 해안선을 방비하느라고 엄청난 공력을 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몽골은 다시 일본에 쳐들어가지 못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몽골은 한 두 번의 실패 이후 일본을 정벌하려는 생각을 다시 하지 못했을까요?
고려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고려가 비록 몽골에게 사위의 나라로서 복속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기간이 30년입니다. 몽골 앞에서 30년 동안 버틴 세력은 고려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천하의 몽골이라고 하더라도 고려를 지배한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힘이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힘을 모아 일본을 공격했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 이후에는 다시 시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최근 일본 학계에서는 “한반도가 일본의 방파제 역할을 해줬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례들을 놓고 한반도의 역사적 의의를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해양 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할 때나 혹은 반대로 대륙 세력이 해양으로 진출할 때 모두 한반도가 역사적 필터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역사적 사례가 6.25 전쟁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수교를 뒤에서 실제 조정한 전략가로서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라는 유명한 미국의 정치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저서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World order)’를 보면 6.25 전쟁에 대한 분석을 하는데,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국군과 연합군이 북한군에게 한번 밀렸다가 다시 치고 올라갈 때 “압록강까지 올라가지 말고 평양-원산 선에서 멈추고 그곳에서 영토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당시 중국 사정을 생각해봅시다. 중국은 공산 정권이 들어선지 얼마 안 돼 아직 정권이 매우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 대만, 필리핀 등지에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이 중국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니, 중국으로서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더니 미군이 주축이 되어 강력한 기세로 밀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중국 측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요. 이에 마오쩌둥(毛澤東)이 미국 측에 암시적으로 경고합니다.
“압록강까지 오지 마라. 만약 이곳을 넘어오면 우리가 반드시 거병해서 맞받아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히 중국을 자극해 중국군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양-원산 선에서 진격을 멈추면 한반도의 80퍼센트를 지배하는 셈이데, 힘이 약해진 북한 정권이 지배하는 나머지 20퍼센트는 결국 흡수됨으로써 통일을 이룰 수 있었으리라는 분석입니다. 물론 키신저의 이런 분석이 꼭 맞는다는 보장은 없고 많은 비판이 가능하겠습니다만, 한번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 역시 중국군이 대거 반격을 해오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끝까지 전진을 명령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중에 해임되고 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원자탄을 만주에 떨어뜨려 초토화시킴으로써 확실하게 끝내줄 생각이었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요(한때 핵폭탄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아홉 발을 괌 기지까지 이송했다고 하니 꼭 빈말만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당시에는 중국 뒤에 소련이 있고 소련 역시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한반도는 핵전쟁 무대가 됐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입니다. 너무나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렇기에 트루먼(Harry Shippe Truman) 대통령이 맥아더를 원자탄만큼 위험한 인간이라고 칭하며 해임한 것이지요. 이상의 여러 가지 사례를 종합해보면 한반도라고 하는 지형이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만나는 일종의 단층선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휴가 기간 ‘그해 역사가 바뀌다(주경철 지음)’를 읽다가 눈에 띄는 구절이 있어서 정리 용도로 그대로 인용해봤다. ICBM과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한 김정은이 괌 기지를 날리겠다고 위협하고, 트럼프가 북에 대해 괌을 공격하면 누구도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날거라 맞불을 놓고, 중국은 그저 미국 세력의 확장을 막으려고 팔짱끼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지형을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에서다. 2017. 8. 11. 부산
강조 표시는 인용자 주, 저작권 등 문제시 자삭하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왜군은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화력에다 사무라이가 함께 운영되는 복합군대였습니다. 그때 들어온 병력 16만명 중 4분의 1이 총을 소지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 군대는 지역별로 영주가 군대를 모아서 제공했는데, 영주가 부자면 총을 사용하는 사수의 비중이 높고 가난하면 사무라이의 비중이 높은 식이지요.
여기에서 16만명이라는 수치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말 엄청난 의미를 가진 병력입니다. 한번 비교해봅시다. 거의 같은 시기에 있었던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전투로는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無敵艦隊)의 영국 공격을 들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Felipe II)가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를 징치하겠다고 군사를 총집합해 무적함대에 승선시킨 뒤 영국으로 파송했지요. 이때 스페인군의 인원이 3만 명이 안 됩니다. 이렇듯 유럽 역사를 뒤흔든 중요한 전투에 투입된 인원도 3만 명이 안 되는데 일본군 16만 명이 조선 땅에 들어왔다는 것은 보통 전투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명운이 갈린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놓고 볼 때 어쨌든 우리가 일본군을 격퇴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맨날 조선 군대가 형편없이 패퇴하고 국왕이 도주했다는 식의 이미지만 떠올리지만 세계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엄청난 대군을 물리친 성과는 결코 무시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산속에 있던 스님들까지도 뛰쳐나와 게릴라전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명나라에서도 원군(援軍)을 보냈는데, 원군을 보낸 이유는 단지 조선에 대한 의리 때문만이 아닙니다. 만약 저 막강한 일본 군사력이 조선을 정복한 후 보급로를 확보하여 밀고 올라간다면 명나라의 운명도 장담 못 하는 실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한번 되새겨봅시다. 일본이라는 강력한 해양세력이 한반도를 통해서 대륙으로 들어가려는 힘이 한반도에서 굴절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 사례는 없을까요? 그러니까 강력한 대륙 세력이 해양으로 들어가려다가 한반도에서 굴절된 경우 말입니다. 몽골 사례를 들 수 있겠네요. 상대적으로 비교해볼 때 몽골군은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라고 이야기합니다. 몽골이 서쪽으로 진격해 들어갈 때의 기세를 보면 정말 엄청났습니다. 무엇보다 상대편을 철저히 파괴할 때는 차마 말하기 힘든 지독하게 잔인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컨대 러시아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 몽골이 보인 행태는 이렇습니다. 상대방이 항복을 안 하고 계속 버티다가 성이 함락된 경우, 저녁에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을 땅에 엎드리게 한 후 그 위에 판자를 깝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몽골군은 밤새 술을 마시고 놉니다. 승자는 위에서 술을 마시고 패자는 그 아래에서 압사당하는 것이지요. 아침에 판다를 걷어보면 모든 사람이 죽어 있습니다. 그러고는 이 지역에 불을 질러 모든 것을 다 태워 없애버리고 떠납니다. 자신들에게 저항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적으로 보여서, 다음 번 적들이 그 소식을 듣고 아예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겠지요.
이토록 강한 세력이 고려로 진격해옵니다. 우리는 오래 버티고 항전하지만 결국 몽골에게 사위의 나라가 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지배를 받기에 이릅니다. 그 후 몽골은 고려를 움직여 해군을 만들어서 일본을 징벌하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공격은 실패로 끝납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태풍 때문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카미카제(神風, 원래 13세기 몽골의 일본 침공시 몽골 함대를 침몰시킨 태풍을 뜻하나,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렸던 일본군 자살 특공대를 지칭하게 되었다) 덕분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곧 신이 도왔다는 의미입니다. 하여튼 일본으로서는 그 강력한 침략군을 태풍이 막아주었으니 천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 생각을 바꿔서 이렇게 질문해보지요. 그런 엄청난 세계사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실패의 원인을 태풍이라고 한다면 너무 단순한 설명 아닐까요? 태풍이 실제 실패의 원인이었다면, 몇 년 쉬어 힘을 모았다가 다시 선단을 만들어서 이번에는 태풍이 안 부는 계절에 공략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일본에서는 다시 몽골이 쳐들어올까봐 해안선을 방비하느라고 엄청난 공력을 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몽골은 다시 일본에 쳐들어가지 못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몽골은 한 두 번의 실패 이후 일본을 정벌하려는 생각을 다시 하지 못했을까요?
고려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고려가 비록 몽골에게 사위의 나라로서 복속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기간이 30년입니다. 몽골 앞에서 30년 동안 버틴 세력은 고려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천하의 몽골이라고 하더라도 고려를 지배한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힘이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힘을 모아 일본을 공격했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 이후에는 다시 시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최근 일본 학계에서는 “한반도가 일본의 방파제 역할을 해줬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례들을 놓고 한반도의 역사적 의의를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해양 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할 때나 혹은 반대로 대륙 세력이 해양으로 진출할 때 모두 한반도가 역사적 필터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역사적 사례가 6.25 전쟁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수교를 뒤에서 실제 조정한 전략가로서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라는 유명한 미국의 정치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저서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World order)’를 보면 6.25 전쟁에 대한 분석을 하는데,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국군과 연합군이 북한군에게 한번 밀렸다가 다시 치고 올라갈 때 “압록강까지 올라가지 말고 평양-원산 선에서 멈추고 그곳에서 영토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당시 중국 사정을 생각해봅시다. 중국은 공산 정권이 들어선지 얼마 안 돼 아직 정권이 매우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 대만, 필리핀 등지에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이 중국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니, 중국으로서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더니 미군이 주축이 되어 강력한 기세로 밀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중국 측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요. 이에 마오쩌둥(毛澤東)이 미국 측에 암시적으로 경고합니다.
“압록강까지 오지 마라. 만약 이곳을 넘어오면 우리가 반드시 거병해서 맞받아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히 중국을 자극해 중국군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양-원산 선에서 진격을 멈추면 한반도의 80퍼센트를 지배하는 셈이데, 힘이 약해진 북한 정권이 지배하는 나머지 20퍼센트는 결국 흡수됨으로써 통일을 이룰 수 있었으리라는 분석입니다. 물론 키신저의 이런 분석이 꼭 맞는다는 보장은 없고 많은 비판이 가능하겠습니다만, 한번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 역시 중국군이 대거 반격을 해오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끝까지 전진을 명령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중에 해임되고 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원자탄을 만주에 떨어뜨려 초토화시킴으로써 확실하게 끝내줄 생각이었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요(한때 핵폭탄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아홉 발을 괌 기지까지 이송했다고 하니 꼭 빈말만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당시에는 중국 뒤에 소련이 있고 소련 역시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한반도는 핵전쟁 무대가 됐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입니다. 너무나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렇기에 트루먼(Harry Shippe Truman) 대통령이 맥아더를 원자탄만큼 위험한 인간이라고 칭하며 해임한 것이지요. 이상의 여러 가지 사례를 종합해보면 한반도라고 하는 지형이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만나는 일종의 단층선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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