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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식구, 그리고 밥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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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입학 후 제대로 된 첫 휴가를 맞아 오래간만에 소설과 에세이 책, 시집들을 꺼내들었다. 기자 생활을 본격 시작한 2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내 정신적 삶에 근간이 되었던 글들이다. 그런데 요즘 밥(이라 쓰고 ‘밥벌이’라 읽는다)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글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책갈피 끼우는 심정으로 정리해둔다. 2017. 8. 8. 전주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대사관 담 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시위군중들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 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김훈, ‘밥’에 대한 단상

明太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 이 투박한 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 나는 가느슥히 女眞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 까마득히 新羅 백성의 鄕愁도 맛본다 백석, 북관(전문)

비 오는 날이면 요즈음도 나는 수제비가 먹고 싶어진다. 그건 아마 어린 날의 메밀칼싹두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벽촌의 비 오는 날의 적막감은 내가 아직 맛보지 못한, 그러나 장차 피할 수 없게 될 인생의 원초적인 고독의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중략) 그때만 해도 한가족끼리도 아래위 서열에 따라 음식 층하가 없을 수 없는 시대였지만 메밀칼싹두기만은 완벽하게 평등했다. 할아버지 상에 올릴 칼싹두기라고 해서 특별한 꾸미를 얹는 일도 없었지만 양까지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막대접으로 한 대접씩 평등했다. 한 대접으로는 출출할 장정이나 머슴은 찬밥을 더 얹어먹으면 될 것이고, 한 대접이 벅찬 아이는 배를 두들겨 가며 과식을 하게 될 것이나 금방 소화가 되어 얹히는 일이 없었다. 땀 흘려 그걸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뱃속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뜻해지면서 좀전의 고적감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이렇게 화목한 집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기쁨인지 감사인지 모를 충만감이 왔다. 칼싹두기의 소박한 맛에는 이렇듯 각기 외로움 타는 식구들을 한 식구로 어우르고 위로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하략) 박완서, 이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없다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 전화를 받고 역으로 달려갔다. / 배가 고팠다. / 죽음의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이 시장기라니. / 불경스럽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팠다. / 기차시간을 기다리며 허겁지겁 먹어치운 / 국밥 한 그릇. / 벌건 국물에 잠긴 흰 밥알을 털어넣으며 / 언젠가 부관(不棺)을 지켜보던 산비탈에서 / 그분이 건네주신 국밥 한 그릇을 떠올렸다. / 그를 만난 것은 주로 장례식에서였다. / 초상 때마다 호상(護喪)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가 /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온 그가 / 이제는 고단한 몸을 뉘고 숨을 내려놓으려 한다. /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 그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국밥 한 그릇을 / 눈물도 없이 먹어치웠다. / 국밥에는 국과 밥과 또 무엇이 섞여 있는지, / 국밥 그릇을 들고 사람들이 /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둘러 삼키려는 게 무엇인지, / 어떤 찬도 필요치 않은 이 가난한 음식을 / 왜 마지막으로 베풀고 떠나는 것인지, / 나는 식어가는 국밥그릇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나희덕, 국밥 한 그릇

(전략) 나는 양념간장을 듬뿍 넣고 잘 저은 다음 묵밥을 입에 넣었다. 그 맛은, 정말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맛이었다. 육수에서는 윤기가 돌아 허한 느낌을 줄여주었고 고추 덕분에 매콤했다. 묵은 이와 싸울 생각이 없는 듯 사락사락 입속에서 놀다가 목으로 술술 잘 넘어갔다. 무엇보다 간이 잘 맞았다. 값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주 쌌다. 2,500원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나는 서울에서 온 진객을 맞아 이 고장의 진정한 향토음식을 맛보여주겠노라고 큰소리를 치며 묵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경기도의 길은, 말 그대로 왕도의 터(畿)가 될 농토 사이로 종횡무진 나 있어서, 제갈량의 팔진도인 양 복잡했고 지역의 토산물인 안개로 도무지 묵밥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백배사죄하며 다음에는 꼭 그집을 찾아내겠노라고, 다음에 꼭 오시라고 빌었다. 손님은 묵밥이라니, 그게 뭐 대단한 음식이겠느냐고 나를 위로하는 건지 우습게 보는 건지 모를 말을 하고는 표표히 떠나가서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 뒤에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묵밥이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에 들어가 묵밥을 먹었다. 산뜻하고 깔끔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그 맛, 식구끼리 해먹는 그 맛은 아니었다. 더 이상 그 집을 찾지 않을 생각이다. 어쩌면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집을 원조라고 나는 생각한다. 원조라고 주장할 만한 이유가 없고 그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든 음식, 묵밥. 그 묵밥의 원조를 나는 맛보았다. (하략) 성석제, 묵밥을 먹으며 식도를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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