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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사동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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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한국어의 사동 표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고려대 정연주 선생님 강의를 정리했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사동문

이 글에서 다룰 사동은 피동과 더불어 태 범주에 속합니다. 태(態, voice)의미역이 문법적 관계로 실현되는 방식을 가리키는 문법범주입니다. 동사에 붙는 문법적 표지(예컨대 어미)로 표시됩니다. 사동문이란 애초의 문장에 새 사동주를 추가하고 그 추가된 사동주로 하여금 애초의 문장에 서술된 내용을 일어나게 하는 방식으로 참여자 역할의 관계를 새로 짜는데, 동사에 이것을 알리는 표지가 붙은 문장을 가리킵니다.

사동문을 만들기 위해선 다음 세 가지 절차를 거칩니다.

  1. 새로운 주어(사동주 causer)를 도입한다.
  2. 원래의 주어(피사동주 causee)를 강등한다.
  3. 동사에 특별한 표지(사동표지)를 첨가한다.

예문과 같습니다.

  • 동생이 숨었다. → 형이 동생을 숨겼다.

사동문의 짝이 되는 주동문은 형용사문, 자동사문, 타동사문이 모두 가능합니다(이와 반대로 피동의 경우에는 타동문에서만 가능합니다). 예문과 같습니다.

  • 형용사문 : 마당이 넓다. → 인부들이 마당을 넓힌다.
  • 자동사문 : 아기가 잔다. → 진이가 아기를 재운다.
  • 타동사문 : 아이가 사과를 먹었다. → 진이가 아이에게 사과를 먹였다.

‘인부들이 마당을 넓힌다’의 경우 인부들이 마당을 넓히도록 누군가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무들 스스로 일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동 개념과 관련해 ‘시킴’의 의미가 있어야 사동이라는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사동주가 새로 추가 되고 해당 사동주가 사태를 유발하도록 하는 의미로 문장이 재편된다면 모두 사동 범주에 포함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한편 사동문에 대응하는 주동문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논란이 있으나 사동문으로 다루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문과 같습니다.

  • *짐이 옮았다. / 진이가 짐을 옮겼다.

한국어 사동 표지의 종류

한국어 사동 표지를 종류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사동 표지 길이에 초점을 맞춰 사동 접미사에 의한 사동을 단형(短型) 사동, 보조동사 구성 -게 하-에 의한 사동을 장형(長型) 사동이라고 합니다.

사동 접미사 (단형 사동)

우선 사동 접미사 -이/히/리/기/우/구/추-가 있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 입-, 알-, 맡-, 비-, 솟-, 낮-

-우- 앞의 모음이 변화는 경우도 있습니다.

  • 쓰다 → 씌우다
  • 타다 → 태우다
  • 서다 → 세우다

한국어의 모든 용언에 사동 접미사가 붙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일부 동사, 형용사에만 결합할 수 있습니다. 다음 종류의 용언에는 결합이 제약됩니다.

  • ‘이기다’ 따위의 어간이 ‘ㅣ’ 모음으로 끝나는 용언
  • ‘주다’ 따위의 수여동사
  • ‘얻다’ 따위의 수혜동사
  • ‘만나다’ 따위의 대칭동사
  • ‘하다’로 끝나는 용언

한편 사동사와 피동사의 형태가 동일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는 문장 전체 구조를 보고 해당 단어가 사동사인지 피동사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그 책이 많이 읽혔다. (피동문)
  • 형이 동생에게 그 책을 읽혔다. (사동문)
  • 저 멀리 남산이 보인다. (피동문)
  • 진이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인다. (사동문)

보조동사 구성 ‘-게 하-‘ (장형 사동)

보조동사 구성 -게 하-로도 사동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게 하-
  • 게 하-

보조동사 구성 -게 하-는 분포가 넓습니다. 접미사 사동이 불가능한 동사(*깨닫기다-깨닫게 하다)는 물론 접미사 사동이 가능한 동사 어간(웃기다-웃게 하다)에도 결합합니다.

그러나 피사동주가 추상명사이거나 무정물인 경우에는 결합이 대체로 제약됩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네 동생 먹을 것만 {남기고/*남게 하고} 다 먹어도 좋다.

보조동사 구성 -게 하-로 만들어진 사동문의 가장 큰 통사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해당 사동문이 주술 관계가 두 번 있는 복문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다음 예문을 보면 주동문은 단문이었지만, 사동문이 복문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아이가 밥을 먹는다. → 진이는 [아이가 밥을 먹]게 했다.

X시키-

서술성 명사 $X$에 ‘시키다’가 붙어 사동표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합격시키-, 통과시키-, 입학시키-, 발전시키-

X시키--하다 형에 대응되면서 서술성 명사 일부에만 결합합니다. 가령 선행요소가 어근이거나(예: *구(救)시키다), 동작/의도성이 약할 경우(예: *생각시키다) -시키다 형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X하다X시키다의 의미가 동일한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X시키다가 사동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나는 빨간 줄과 파란 줄을 {연결했다/연결시켰다}.

주동문 주어의 강등 양상

주동문을 사동문으로 만들 때 주동문 주어는 문장 내 다른 요소로 강등됩니다. 유형별로 강등 양상이 다른데요.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단형사동의 경우

주동문이 형용사문, 자동사문인 경우 주동문 주어는 사동문에서 목적어로 바뀝니다.

  • 형용사문 : 길이 넓다. → 인부들이 길을 넓혔다.
  • 자동사문 : 아이가 운다. → 진이가 아이를 울렸다.

주동문이 타동사문인 경우 주동문 주어는 사동문에서는 목적어나 여격어로 바뀝니다.

  • 아이가 밥을 먹는다. → 진이가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 진이가 아이를 밥을 먹였다.

장형사동의 경우

주동문의 주어는 내포절의 주어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모절의 여격어나 목적어로 실현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e_i$는 $i$가 들어갈 자리인데 생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 아이가 밥을 먹는다.

    → 진이는 [아이가 밥을 먹]게 했다. (내포절 주어)

    → 진이는 아이$i$에게 [$e_i$ 밥을 먹]게 했다. (모절 여격어, 의사전달 행위에 초점)

    → 진이는 아이$i$를 [$e_i$ 밥을 먹]게 했다. (모절 목적어, 피사동주의 수동성에 초점)

‘진이는 아이에게 밥을 먹게 했다’의 경우, ‘아이에게’는 동사 ‘먹다’의 논항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에게 밥을 먹다’라는 문장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이에게’는 모절인 ‘진이는 ~게 했다’에 걸린다고 보아야 하며 동사 ‘하다’와 관련지어 해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아이에게’는 모절의 성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내포절의 주어(아이가)가 생략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가 이미 모절에서 실현됐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이는 아이를 밥을 먹게 했다’의 경우, ‘아이를’은 동사 ‘먹다’의 논항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를 밥을 먹다’라는 문장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이를’은 모절인 ‘진이는 ~게 했다’에 걸린다고 보아야 하며 동사 ‘하다’와 관련지어 해석해야 합니다. 한편 내포절의 주어(아이가)가 생략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이 이미 모절에서 실현됐기 때문입니다.

주동문 주어를 모절 여격어(아이에게)로 실현할 경우 사동문의 의미가 의사전달 행위에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위 예문의 경우 진이가 아이에게 밥을 먹으라는 말을 건넸다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반면 모절 목적어(아이를)로 실현할 경우 피사동주의 수동성에 초점이 갑니다. 위 예문의 경우 진이가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밥을 먹도록 시키고 있다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단형사동 vs 장형사동

이번엔 단형사동과 장형사동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통사적 차이

우선 단형사동은 단문이고, 장형사동은 복문입니다. 다시 말해 장형사동의 -게 하-에서 ‘-게’는 내포절을 이끄는 어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통사적 차이점들이 꽤 있습니다.

우선 장형사동에서는 피사동주가 내포절의 주어이기 때문에 주격조사 ‘-가’와 통합될 수 있지만, 단문인 단형사동에서는 피사동주가 주어가 아니므로 ‘-가’와 통합될 수 없습니다.

부사어가 걸리는 위치도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단형사동의 경우 부사어는 문장의 주어와 관련지어 해석되고, 장형사동의 경우 부사어는 모절 주어뿐 아니라 내포절 주어에도 관련될 수 있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진이가 아이에게 옷을 빨리 입혔다. (빨리 행동(시킴)하는 사람은 진이)
  • 진이가 아이$i$에게 [$e_i$ 옷을 빨리 입]게 했다. (ㄱ. 빨리 행동(시킴)하는 사람은 진이, ㄴ. 빨리 행동(옷 입기)하는 사람은 아이)
  • 진이가 아이에게 그 책을 읽혔다. (행동(시킴)을 못한 사람은 진이)
  • 진이가 아이$i$에게 [$e_i$ 그 책을 읽]게 했다. (ㄱ. 행동(시킴)을 못한 사람은 진이, ㄴ. 행동(책 읽기)를 못한 사람은 아이)
  • 진이가 아이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먹인다. (숟가락을 들고 있는 사람은 진이)
  • 진이가 아이$i$에게 [$e_i$ 숟가락으로 밥을 먹]게 한다. (ㄱ. 숟가락을 들고 있는 사람은 진이, ㄴ. 숟가락을 들고 있는 사람은 아이)

한국어의 주어 판별법 가운데 하나로 주어 자리에 오는 명사가 존대의 대상이면 서술어인 용언에 주체경어법의 선어말어미 ‘-시-‘가 결합합니다. ‘-시-‘는 단형사동에서는 한군데에만 쓰일 수 있지만, 장형사동에서는 두 군데에서 쓰일 수 있습니다.

  • 선생님께서 진이에게 책을 읽히다. (문장의 유일한 주어인 ‘선생님’을 높임)
  • 선생님께서 진이$i$에게 [$e_i$ 책을 읽]게 하다. (사동주 ‘선생님’를 높임)
  • 아이들이 선생님$i$께 [$e_i$ 책을 읽으]게 했다. (피사동주 ‘선생님’을 높임)
  • 박 선생님께서 우리 선생님$i$께 [$e_i$ 책을 읽으]게 하다. (사동주, 피사동주 모두 높임)

한국어의 주어는 재귀대명사 ‘자기’의 선행사가 됩니다. 단형사동은 단문, 장형사동은 복문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결속 양상 또한 다릅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진이가 아이에게 자기 옷을 입힌다. (진이의 옷을 입힘)
  • 진이가 아이$i$에게 [$e_i$ 자기 옷을 입]게 한다. (ㄱ. 진이의 옷을 입힘, ㄴ. 아이의 옷을 입힘)

의미적 차이

단형사동은 직접사동(주어가 행동 주체가 되어 직접 행동)의 의미가 강합니다. 반면 장형사동은 간접사동(주어는 지시만 하고 피사동주가 스스로 행동)의 의미가 강합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진이가 갓난아이에게 옷을 입혔다. (주어 ‘진이’가 직접 아이의 옷을 입혀줌)
  • *진이가 갓난아이에게 옷을 입게 했다. (피사동주 ‘갓난아이’가 스스로 옷을 입음 → 의미상 비문)

동사에 따라서는 사동주가 직접 행위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서, 이때는 단형사동이라도 간접사동으로만 해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대 ‘읽히다’, ‘웃기다’, ‘울리다’와 같은 경우가 가리키는 사태에서 사동주는 지시만 할 뿐, 읽고 웃고 우는 행위는 피사동주가 스스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습니다.

  • 읽히다 : 수업시간에 교사가 학생에게 읽도록 시킨다든지 하는 보다 적극적인 사역.
  • 읽게 하다 : 읽으라고 책만 사 놓고, 읽는 것은 확인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정도로 소극적인 사역.

즉 단형사동이 간접사동으로 해석되더라도, 대응되는 장형사동보다는 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사역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형사동을 쓸 것인지, 단형사동을 쓸 것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가 흐느끼며) 내가 아이를 죽였어 : 아이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괴로움과 책임감을 느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음
  •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저 좀 태워 주세요 : 사동주는 피사동주(화자)를 직접 버스에 오르게 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을 할 필요는 없고 그저 버스를 세워 주기만 하면 되지만, 사동주(버스 기사)의 선택이 절대적이므로 단형사동을 씀.
  • (장애인에게 양보를 하자는 취지에서) 장애인을 먼저 타게 합시다 : 실제로는 장애인의 휠체어를 들어준다든지 해서 사동주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지만, 피사동주(장애인)의 자발적 의지를 존중하기 위해 장형사동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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