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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와 의지적 낙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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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맞아 서점에 들렀다. 인문학 서가에서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해 역사가 바뀌다.’ 책 판매를 위한 도발적인 제목 같이 느껴졌지만 저자 이름이 아주 반가웠다. 주경철 지음. 학부 시절 감명깊게 들었던 수업이 떠올라서 책장을 넘겼다. 서론은 이렇다.

나는 무엇보다 인간사를 큰 차원에서 이해해보기를 권유하고 싶었다. 현대사회는 혼돈과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한편으로 우리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해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을 심화시킬 우려도 크다.

언론사 입사 이후 내 관심의 스케일은 동네 골목 한귀퉁이 정도에 불과했다. 1개월, 아니 하루 반나절에 이르는 시간이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대학원 진학 이후 내 지식의 반경은 그보다 더 작아졌는지 모른다. 선생님 관심의 스코프가 인류 모든 역사라는 사실이 존경스러웠다.

선생님 책은 콜럼버스의 정신세계를 해부함으로써 유럽문명이 아메리카와 아시아 대륙으로 팽창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을 시도한다. 선생님에 따르면 콜럼버스의 항해 동기는 이렇다.

콜럼버스가 아시아로 향한 것은 평범한 항해가 아니다. 단순히 새로운 항로를 발견해서 돈을 벌겠다는 수준에서 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아무리 돈에 대한 욕심이 넘친다고 해도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돈을 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저 먼 바다를 항해한다고 했을 때 콜럼버스가 가졌던 내면의 동기(motivation)에는 세속적인 요소와 함께 어떤 세계사적인 과업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것이 동시에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일종의 ‘의지적 낙관주의자’였던 것 같다. 콜럼버스는 꽤 많은 책을 읽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콜럼버스가 집중적으로 주석을 단 부분, 즉 콜럼버스를 매료시킨 책 구절이 매우 흥미롭다. “지구는 굉장히 작다. 육지는 6이고 바다가 1이다”

콜럼버스는 조만간 스페인 출신의 새로운 다윗이 이슬람 세력을 최종적으로 눌러 이기고 새 예루살렘을 건설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군대를 키우기 위한 자금은, 자신이 신대륙에서 발견할 금광이다. 콜럼버스는 이렇게 썼다. “현재 스페인 왕이 마지막 황제이시고 그분이 나를 선택해서 내 항해를 지원하여 아시아에 갔으니 약속된 금을 얻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콜럼버스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들만 믿었던 셈이다. 그리고 바로 콜럼버스 자신이 신대륙 발견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성취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한편 콜럼버스의 이름은 기독교 성인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다. 크리스토퍼 성인의 가장 큰 특징은 예수를 안고 물을 건너 먼 곳으로 갔다는 점이다. 이름에 이 성인을 본받아 살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고 가정하면, 콜럼버스의 염원은 자신이 예수의 뜻을 저 멀리,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먼 이국땅까지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주경철 선생님은 이렇게 평가했다.

콜럼버스가 생각한 우주관에서 이 세상은 그저 물질적인 성격의 땅이 아니라 의미가 충만한 땅이다. 그가 아시아로 향한다는 것은 단순히 먼 이국으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미 알고 있는 곳, 구약에서 이미 예약되어 있는 곳을 향해 인류의 꿈을 실현하려 가는 것이라고 콜럼버스는 스스로 의미부여를 했다. (중략) 물론 당대에 콜럼버스만이 이러한 중세의 종교적 세계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 사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실제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서쪽 항해를 하면 아시아로 쉽게 갈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사람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콜럼버스만이 그런 생각을 체계화시키고 또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꿈이지만, 실제 새로운 항로를 기획해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서 결국 그것을 달성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원래 목표는 지금 시각에서 보면 어긋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집요한 노력 덕분에 세계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콜럼버스의 ‘의지적 낙관주의’는 유럽 세계의 아메리카 진출이라는 세계사적 족적을 남겼다. 콜럼버스의 황당한 내면 세계, 유럽 제국주의의 폭력성 등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그의 무모한 도전은 개인적으로는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는 앵무새, 즉 ‘Artificial Intelligence’을 향한 나의 연구도 아시아 대륙이라는 미지의 땅에 가려는 콜럼버스의 항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 시작은 ‘내가 하면 된다’는 ‘의지적 낙관주의’일 것이다.

2017. 8. 10.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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