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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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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부터 1주일 간 로마를 시작으로 피렌체, 아시시, 베니스, 밀라노 5개 도시를 방문했다. 이 느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짧은 인상 위주로 정리해 둔다. (2018년 2월 11일 밀라노 말펜사 공항)

#01. 환승하기 위해 잠시 들렀던 터키 이스탄불 소재 아타튀르(Atatürk) 국제공항 서비스는 형편없었다. 환승 게이트 안내는 비행기 탑승 1시간 전에야 이뤄져서 환승객들이 공항 곳곳에서 갈팡질팡했다. 비행기 탑승 30분 전 게이트가 오픈된 것까지는 좋았다. 승객들을 게이트에서 스텝카(탑승용 계단차량)까지 실어나르는 버스에 가둬두고는 탑승시각이 넘어서까지 출발도 않고 대기하는 것 아닌가. 게이트를 관리하는 직원은 단 한 명. 항공편이 특별히 지연(delay)되어야 할 물리적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이날 이스탄불발-로마행 TK1861편은 30여분 가까이 늑장 출발했다. 그에 반하면 인천공항은 정말이지 세계 최고 수준이다.

#02. TK1861편 창가에 비친 이탈리아의 첫 인상은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평온한 대평원’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로마 주변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드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조그마한 촌락들이 있으며 그 촌락들 사이를 거미줄처럼 잇는 길이 나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테베레 강 유역, 아펜니노 산맥과 티레니아해 사이에 있는 넓은 평야지대를 ‘라티움(Latium)’이라고 한단다. 초기 고대 로마가 이곳을 중심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라티움 같은 배후 생산지역이 없었다면 로마 같은 소비 도시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로마는 예나 지금이나 향락이 중심이다.

#03. 짐을 숙소에 내팽겨치다시피해서 처음 방문한 곳은 ‘콜로세움(Colosseum)’. 고대 로마 시대를 대표하는 원형 경기장이다. 테르미니역에 있는 숙소에서 멀지 않아서 우연히 Parco Del Colle Oppio 공원을 거쳐 가게 됐다. 그런데 공원에서 콜로세움을 후면에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한적한 벤치까지 마련돼 있다. 지중해 따뜻한 겨울햇살을 내리쬐며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콜로세움을 바라보는 경험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때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04. 콜로세움을 기점으로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에 이르는 거리 ‘Via dei Fori Imperiali’는 일요일이면 차없는 거리로 변신한다. 덕분에 온갖 행위예술인들이 세계 관광객들의 이목을 끈다. 특히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 앞에서 공연하던 라틴 형제 3인방이 기억에 남는다. 기타 2, 콘트라베이스 1로 구성된 이들은 연주도 연주지만 한때 번성했지만 흔적만 남아있는 로마 중심 시가지를 배경으로 빼어난 실력을 뽐내고 있어 무척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맥수지탄(麥秀之歎)이나 산 사람은 어찌됐든 살아야 한다. 3인방 중 한 명이 공짜로 주겠다며 CD 두 장을 내게 건넸다. 공짜인데 어찌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노래 두 곡이 끝나고 나서 20유로를 달란다. 허허.. 주머니를 뒤집어 돈 없다는 시늉을 했다. 대신 노랫값만 내고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역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05.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과 바티칸 궁전 내 시스티나 성당(Aedicula Sixtina)은 이탈리아 여행 전체를 통틀어 최고라 할 만 하다. 규모도 웅장하고 장식과 그림 하나하나 정성이 깃들어 있다. 신자가 아니라도 절로 경외감이 들 정도로.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벽에 그린 그림들이 압권이다. 1시간 넘게 ‘아담의 창조(천장)’, ‘최후의 심판(제단 쪽 벽면 전체)’을 구석구석 보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 당시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프레스코화를 그렸을까. 그 신앙심이 존경스럽다.

#06. 로마에서 기차로 2시간여 거리인 소도시 아시시(Assisi). 평생 세속과는 멀리 하고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한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1181-1226)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안치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지하엔 성음악이 흐르고 있다. 거리는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그의 추종자들은 지금까지도 이 촌락에서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며 수도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상술 하나만큼은 철저히 세속적이다. 토마토와 치즈를 곁들인 피아디나(piadina)와 콜라 한 캔에 12유로(우리돈 1만7000원 가량)나 한다. 놀랍다.

#07.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는 실로 대단하다. 그 빼어나고 방대한 작품들 모두 한 가문(메디치)이 기증한 것이라니. 미술에는 그다지 조예가 없어서 사람들이 많이들 감상하고 있는 작품들을 위주로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떤 작품이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디테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블로그 대문사진이나 휴대폰 잠금화면으로 쓰려고 그림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다.

#08. 비 갠 후 노을 진 피렌체 시내 겨울 풍광은 무척 아름답다. 피렌체 대성당의 쿠폴라(cupola)를 오르는 463개의 계단이 조금 버겁기는 하지만. 비가 주륵주륵 오는데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09. 베니스엔 차가 없다. 바다와 운하를 오가는 곤돌라(gondola)들뿐이다. 경찰차, 구급차도 모두 곤돌라다. 버스도 물 위를 다닌다. 예전 베니스 귀족들은 곤돌라 치장에 꽤 많은 돈을 썼다 한다. 차 대신에 말이다. 어쨌든 저렴하고 탈 만한 지상 교통수단이 없어 베니스 시내 전체를 계속 걸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10. 운좋게 베니스 2월 축제를 볼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춤과 노래는 언제나 흥겹다. 형형색색의 옷과 가면으로 치장한 사람들은 국적과 관계없이 거리에서 모두 친구가 됐다.

#11. 밀라노는 세계 패션 중심이다. 명품 상점들이 즐비하다. 행인들도 꽤 멋쟁이들인 것 같다. 하지만 밀라노는 화장실 인심이 박하다. 크디큰 쇼핑몰 안에 공용 화장실 하나 찾을 수가 없다. 가끔 찾는다 해도 0.5~1.5유로를 내야 한다. 그런데 저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똥 누고 오줌을 싸는 걸까. 패션보다 중한 건 용변 해결일텐데. 용무가 급해서 공용 화장실을 찾느라 밀라노 중심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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