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생성문법
30 Apr 2017 | generative grammar
이번 글에서는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고종석의 언어학 강의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의 56~60페이지를 그대로 옮겨 왔습니다. 개인적인 정리 용도로 타이핑 겸 긁어왔는데요, 저작권법 등 문제가 될 경우 자삭하겠습니다.
변형생성문법?
흔히 촘스키(Noam Chomsky) 언어학을 변형생성문법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변형생성문법이란 뭘까요? 그리고 그것이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구조주의 언어학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다음 두 문장을 봅시다.
(1)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감격스럽게도 제게 꽃을 이만큼이나 보내 오셨어요.
(2) 존경하는 제자들이 기특하게도 선생님께 꽃을 이만큼이나 보내 왔어요.
이 두 문장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같습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죠. 전통문법에서 흔히 주부(主部)라고 부르는 부분만 살핍시다. 동사의 현재관형형(존경하는)이 명사(선생님/제자들)를 수식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명사구에 주격표지(께서/이)가 붙어 주어 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은 정말 같은 구조를 지녔을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 둘 다 현재관형형 동사 뒤에 수식되는 명사가 이어진다는 점에서입니다. 명사(구)를 ‘NP’로 나타내고 동사의 현재관형형을 ‘V-는’으로 나타내면,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은 둘 다 [V-는 NP]라는 구조를 지닌 NP(명사구)입니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구조를 촘스키는 표면구조(surface structure)라고 불렀습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표면구조는 음성 해석 정보를 지녔습니다.
그런데 촘스키는 이런 표면구조 저 아래에 누워 있는(underlie) 또 하나의 구조를 가정합니다. 촘스키가 심층구조(deep structure)라고 부르는 이 층위에서는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의 구조가 서로 다릅니다.
심층구조에서 ‘존경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을 존경한다’입니다. 다시 말해 [NP 목적격표지 V-ㄴ다]의 구조를 지닌 S(문장)입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제자들’은 심층구조에서 ‘제자들이 존경한다’입니다. 다시 말해 [NP 주격표지 V-ㄴ다]의 구조를 지닌 S입니다.
즉 심층구조에서 ‘선생님’은 ‘존경하다’의 목적어인 데 반해, ‘제자들’은 ‘존경하다’의 주어입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심층구조는 의미 해석 정보를 지녔습니다.
서로 다른 심층구조를 지닌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이 동일한 표면구조를 지니게 되는 것은, [NP 목적격표지 V-ㄴ다] 구조의 문장과 [NP 주격표지 V-ㄴ다] 구조의 문장을 [V-는 NP]라는 동일한 NP(명사구)로 유도하는 규칙이 한국어에 있기 때문입니다. 심층구조에서 표면구조를 유도하는 과정을 ‘변형’이라고 하고, 그 변형에 쓰인 규칙을 ‘변형규칙(transformation rule)’이라 합니다.
촘스키 문법을 변형생성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변형규칙이라는 장치를 사용하는 생성문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성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한한 규칙들의 집합(구조)을 통해서 무한한 적격(well-formed) 문장들을 생성해내는 모국어 화자의 능력에 이 이론이 관심을 쏟기 때문입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은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의 구조적 다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잘해봐야 그 다름을 ‘관찰’하거나 ‘기술’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일반 언어 이론은 이런 관찰적 타당성(ovservational adequacy)이나 기술적 타당성(descriptive adequacy)을 넘어서는 설명적 타당성(explanatory adequacy)을 지녀야 한다고 촘스키는 말합니다. 물론 자신의 변형생성문법이야말로 그런 설명적 타당성을 지녔다는 거지요.
표면구조와 심층구조
표면구조는 같은데 심층구조는 다른 예로 촘스키가 제시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a) John is easy to please (존은 까다롭지 않다)
(b) John is eager to please (존은 남에게 잘 보이려 한다)
명백히 보이듯 이 두 문장의 표면구조는 같지만 심층구조에서 (a)의 John은 please의 목적어이고, (b)의 John은 please의 주어입니다.
표면구조가 다른데 심층구조가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ㄱ) 나는 당신이 바보라고 생각했어
(ㄴ) 나는 당신을 바보로 생각했어
(ㄱ) I believed you was an idiot
(ㄴ) I believed you (to be)an idiot
한국어든 영어든 이 문장의 심층구조는 앞쪽 표면구조에 가깝습니다. 그 심층구조에 인상변형(raising transformation)이라는 규칙이 적용되면 뒤쪽 표면구조가 유도됩니다. 또 능동문과 피동문도, 동일한 심층구조가 서로 다른 표면구조로 유도된 대표적 예입니다.
변형생성문법의 의의와 한계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은 초기의 표준이론에서 확대표준이론(EST), 지배결속이론(GB), 최소주의프로그램(MP) 등으로 정교화하면서 한 세대 이상 세계 언어학계를 풍미했습니다. 영어권 학계만이 아니라 서유럽, 일본, 중국, 대만, 한국 등지에서 촘스키는 거의 동시에 읽혔습니다.
촘스키 언어학이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이론의 보편 지향성에 있을 겁니다. 촘스키는 수많은 자연언어들의 문법이 표면구조에서는 달라도 심층구조에서는 같으리라 예상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두드러진 욕망 하나는 보편문법을 수립하는 것이었지요. 이탈리어어나 프랑스어를, 일본어나 중국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은 언어학자들이 촘스키 이론을 자신의 가장 익숙한 언어에 적용해보고 싶어 했던 것이 이해됩니다.
그렇지만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도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실 언어라는 현상은 너무나 복잡해서, 언어가 이거다, 또는 저거다, 라고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언어는 X다, 라는 명제에서 X는 무수히 많을 수도 있고, 하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언어의 ‘본질’에 대한 견해는 연구자들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이번 글에서는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고종석의 언어학 강의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의 56~60페이지를 그대로 옮겨 왔습니다. 개인적인 정리 용도로 타이핑 겸 긁어왔는데요, 저작권법 등 문제가 될 경우 자삭하겠습니다.
변형생성문법?
흔히 촘스키(Noam Chomsky) 언어학을 변형생성문법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변형생성문법이란 뭘까요? 그리고 그것이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구조주의 언어학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다음 두 문장을 봅시다.
(1)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감격스럽게도 제게 꽃을 이만큼이나 보내 오셨어요.
(2) 존경하는 제자들이 기특하게도 선생님께 꽃을 이만큼이나 보내 왔어요.
이 두 문장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같습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죠. 전통문법에서 흔히 주부(主部)라고 부르는 부분만 살핍시다. 동사의 현재관형형(존경하는)이 명사(선생님/제자들)를 수식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명사구에 주격표지(께서/이)가 붙어 주어 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은 정말 같은 구조를 지녔을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 둘 다 현재관형형 동사 뒤에 수식되는 명사가 이어진다는 점에서입니다. 명사(구)를 ‘NP’로 나타내고 동사의 현재관형형을 ‘V-는’으로 나타내면,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은 둘 다 [V-는 NP]라는 구조를 지닌 NP(명사구)입니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구조를 촘스키는 표면구조(surface structure)라고 불렀습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표면구조는 음성 해석 정보를 지녔습니다.
그런데 촘스키는 이런 표면구조 저 아래에 누워 있는(underlie) 또 하나의 구조를 가정합니다. 촘스키가 심층구조(deep structure)라고 부르는 이 층위에서는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의 구조가 서로 다릅니다.
심층구조에서 ‘존경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을 존경한다’입니다. 다시 말해 [NP 목적격표지 V-ㄴ다]의 구조를 지닌 S(문장)입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제자들’은 심층구조에서 ‘제자들이 존경한다’입니다. 다시 말해 [NP 주격표지 V-ㄴ다]의 구조를 지닌 S입니다.
즉 심층구조에서 ‘선생님’은 ‘존경하다’의 목적어인 데 반해, ‘제자들’은 ‘존경하다’의 주어입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심층구조는 의미 해석 정보를 지녔습니다.
서로 다른 심층구조를 지닌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이 동일한 표면구조를 지니게 되는 것은, [NP 목적격표지 V-ㄴ다] 구조의 문장과 [NP 주격표지 V-ㄴ다] 구조의 문장을 [V-는 NP]라는 동일한 NP(명사구)로 유도하는 규칙이 한국어에 있기 때문입니다. 심층구조에서 표면구조를 유도하는 과정을 ‘변형’이라고 하고, 그 변형에 쓰인 규칙을 ‘변형규칙(transformation rule)’이라 합니다.
촘스키 문법을 변형생성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변형규칙이라는 장치를 사용하는 생성문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성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한한 규칙들의 집합(구조)을 통해서 무한한 적격(well-formed) 문장들을 생성해내는 모국어 화자의 능력에 이 이론이 관심을 쏟기 때문입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은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의 구조적 다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잘해봐야 그 다름을 ‘관찰’하거나 ‘기술’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일반 언어 이론은 이런 관찰적 타당성(ovservational adequacy)이나 기술적 타당성(descriptive adequacy)을 넘어서는 설명적 타당성(explanatory adequacy)을 지녀야 한다고 촘스키는 말합니다. 물론 자신의 변형생성문법이야말로 그런 설명적 타당성을 지녔다는 거지요.
표면구조와 심층구조
표면구조는 같은데 심층구조는 다른 예로 촘스키가 제시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a) John is easy to please (존은 까다롭지 않다)
(b) John is eager to please (존은 남에게 잘 보이려 한다)
명백히 보이듯 이 두 문장의 표면구조는 같지만 심층구조에서 (a)의 John은 please의 목적어이고, (b)의 John은 please의 주어입니다.
표면구조가 다른데 심층구조가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ㄱ) 나는 당신이 바보라고 생각했어
(ㄴ) 나는 당신을 바보로 생각했어
(ㄱ) I believed you was an idiot
(ㄴ) I believed you (to be)an idiot
한국어든 영어든 이 문장의 심층구조는 앞쪽 표면구조에 가깝습니다. 그 심층구조에 인상변형(raising transformation)이라는 규칙이 적용되면 뒤쪽 표면구조가 유도됩니다. 또 능동문과 피동문도, 동일한 심층구조가 서로 다른 표면구조로 유도된 대표적 예입니다.
변형생성문법의 의의와 한계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은 초기의 표준이론에서 확대표준이론(EST), 지배결속이론(GB), 최소주의프로그램(MP) 등으로 정교화하면서 한 세대 이상 세계 언어학계를 풍미했습니다. 영어권 학계만이 아니라 서유럽, 일본, 중국, 대만, 한국 등지에서 촘스키는 거의 동시에 읽혔습니다.
촘스키 언어학이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이론의 보편 지향성에 있을 겁니다. 촘스키는 수많은 자연언어들의 문법이 표면구조에서는 달라도 심층구조에서는 같으리라 예상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두드러진 욕망 하나는 보편문법을 수립하는 것이었지요. 이탈리어어나 프랑스어를, 일본어나 중국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은 언어학자들이 촘스키 이론을 자신의 가장 익숙한 언어에 적용해보고 싶어 했던 것이 이해됩니다.
그렇지만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도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실 언어라는 현상은 너무나 복잡해서, 언어가 이거다, 또는 저거다, 라고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언어는 X다, 라는 명제에서 X는 무수히 많을 수도 있고, 하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언어의 ‘본질’에 대한 견해는 연구자들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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