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Noun)란 무엇인가
08 May 2017 | word class
이번 글에서는 명사(Noun)와 관련된 여러 개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경희대 이선웅 교수님 강의와 표준국어문법론을 정리하였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명사의 정의
학교문법에 따르면 명사는 일반적으로 사물의 이름을 가리키는 품사입니다. 명사 검증 기준으로 흔히 사용되는 것은 ‘무엇이 무엇이다, 무엇이 어찌한다, 무엇이 무엇을 어찌한다’의 틀에 나타나는 ‘무엇’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는 바로 기능(function)에 초점을 맞춘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명사의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유정명사 : 아버지, 철수, 사람, 개, 고양이, 여우…
무정명사 : 꽃, 풀, 진달래, 돌, 바위, 책상…
현상 : 아침, 낮, 바람, 노을, 번개…
추상적 개념 : 민주주의, 개념, 명제…
아래 예시와 같이 동작성, 상태성의 의미를 지니는 명사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하다’와 어울려 동사, 형용사로 기능합니다. 이와 관련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 술어명사 챕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작성 : 입학, 독립, 합류, 희망, 일출…
상태성 : 곤란, 성실, 신성, 공평, 무한…
이후 설명은 문법적으로 이해하기 까다로운 명사 개념들 소개한 내용입니다.
의존명사, 형식명사
학교문법에 따르면 의존명사는 관형어의 선행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명사를 가리킵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습니다.
*이가 온다. (다른 이가 온다)
*분을 공경해야 한다. (저 분을 공경해야 한다)
20세기 후반의 국어학 연구에서는 의존명사의 의미적 추상성/형식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의존명사의 의미가 추상적/형식적이어서 실제 문맥에서 자립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반드시 의미를 제한/보충하여 주는 선행 요소에 의존하여서만 문맥에 나타나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습니다.
(ㄱ) 갈 데가 없다.
(ㄴ) 그 책을 다 읽는 데 3일 걸렸다.
(ㄷ) 머리 아픈 데 먹는 약
(ㄹ) 내가 준 것을 아직도 갖고 있니?
(ㅁ) 그가 고백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니?
(ㄱ)의 ‘데’는 본래 장소를 뜻하는 말이지만 (ㄴ)과 (ㄷ)에서 그 의미가 매우 추상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ㄹ)의 ‘것’은 본래 구체적 대상을 뜻하는 말이지만 (ㅁ)에서는 추상적 대상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의존명사는 선행 요소에 의존적이면서도 그 의미가 추상적이거나 형식적입니다.
그러나 아래 같은 예들이 있어 분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a) 3개월 이내에 소득 신고를 하지 않은 자(者)
(b) 그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c) 세 살 또래의 어린이가 가장 다루기 어렵다.
(d) 요즘 같은 세상에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다.
(e) 강경 일변도의 정책
(f) 내수를 진작한다는 미명하에
(g) 추상적 사고의 소산
위에서 예로 든 의존명사들은 모두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는 사람, ‘때문’은 이유, ‘또래’는 그 정도의 나이, ‘노릇’은 구실/역할 등을 뜻합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이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식명사 : 의미가 추상적/형식적이면서도 통사적으로 의존적인 명사, 주로 고유어 계통 (예 : ‘데’, ‘것’)
의존명사 : 의미가 구체적이지만 통사적으로는 의존적인 명사, 주로 한자어 계통 (예 : ‘자’, ‘때문’, ‘또래’, ‘노릇’, ‘일변도’, ‘미명’, ‘소산’)
부접명사
부접명사(附接名詞)란 무표지 명사구를 보충어로 반드시 요구하며 그에 직접 결합하는 의존명사의 한 부류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검찰(의) 발표
(2) 국문과(*의) 출신
(3) 빠른 선수 위주(爲主)
(4) *너는 위주가 무엇이냐?
(5) 시험(*의) 걱정
(6) 그 사람은 늘 걱정이 많다.
일반적으로 ‘명사+명사’ 결합에서는 중간에 속격조사 ‘-의’를 삽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1)처럼 ‘검찰 발표’, ‘검찰의 발표’ 둘 다 맞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2)에서는 ‘-의’를 넣으면 비문이 됩니다. ‘출신’이라는 명사는 ‘국문과’라는 명사(구)를 보충어로 반드시 요구하면서 그에 직접 결합하기 때문에 부접명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3)과 (4)에서 ‘위주’는 선행 명사구(빠른 선수) 없이 자립적으로 쓰일 수 없고 선행 명사구와 직접 결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주’는 부접명사입니다.
(5)에선 ‘걱정’이 의존적이지만 (6)에서는 자립적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걱정’은 부접명사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
술어명사
술어명사(predicative noun)는 사건, 행위, 상태 등 의미를 지니는 명사를 뜻합니다. 예컨대 ‘사랑’, ‘답변’은 대표적인 술어명사입니다. 그런데 술어명사는 동사나 형용사처럼 논항이 대체로 필요합니다. 논항이란 문장에서 문법적으로 중심 역할을 하는 핵이 요구하는 필수 성분을 말합니다. 아래 표를 볼까요?
구분
(가)
(나)
1
철수의 영희 사랑
정부의 야당 질문에 대한 답변
2
철수가 영희를 사랑한다
정부가 야당 질문에 대해 답변하였다
위 표에서 1행과 2행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가)-2의 경우 ‘사랑하다’는 동사의 논항은 행위주 ‘철수’, 대상역 ‘영희’로 실현돼 있습니다. (가)-1에서 ‘사랑’이라는 명사의 논항은 (가)-2와 마찬가지로 ‘철수’와 ‘영희’입니다.
(나)-2의 경우 ‘답변하다’는 동사의 논항은 행위주 ‘정부’, 대상역 ‘야당 질문’으로 실현돼 있습니다. (나)-1에서 ‘답변’이라는 명사의 논항은 (나)-2와 마찬가지로 ‘정부’, ‘야당 질문’입니다.
술어명사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위 표에서처럼 술어명사의 논항이 그에 대응하는 용언 서술어가 형성하는 문장의 논항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어 술어명사의 대부분은 논항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부류의 다른 예로는 ‘건강’, ‘공부’, ‘운동’, ‘여행’ 등이 있습니다.
물론 그 수는 작지만 예외가 있기는 합니다. 다시 말해 논항을 요구하지 않는 술어명사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비가 그친 후 출발하자.
‘비’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이라는 실체와 ‘물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짐’이라는 사건을 나타낸다는 것이죠. 위 예문의 ‘비’는 사건에 가까운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 ‘비’는 일반적인 술어명사와 달리 행위주, 대상역 등 논항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류의 예로는 ‘눈’, ‘천둥’, ‘번개’ 등이 있습니다.
논항을 요구하지 않는 술어명사의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구분
(A)
(B)
1
철수는 일을 마친 후 바로 귀가하였다
영희는 시험을 보는 도중에 잠이 들었다
2
*철수의 일 도중에 영희가 찾아왔다
*영희의 시험 중에 철수가 들어왔다
위 예시에서 ‘일’과 ‘시험’은 사건성, 행위성을 확인할 수 있지만 논항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행위주 논항이 실현된 명사구 ‘철수의 일 도중’, ‘영희의 시험 중’은 되레 비문이 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선웅(2012)은 술어 성격을 지니는 명사를 술어명사라고 규정하는데요. 그는 술어를 아래와 같이 정의합니다.
술어(predicator)란 논항구조를 가지거나 상적특성을 지니면서 사건, 행위, 상태 등의 의미적 실체를 나타내는 언어 형식이다.
동일한 명사가 술어명사와 결과명사 두 역할 모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건 표현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술어명사, 사건/행위의 결과 표현에 강조점이 있다면 결과명사로 분류되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술어명사 : 결정 후 생각해 보자.
(2) 결과명사 : 국민들은 정부의 결정에 격노하였다.
정희정(2000)은 ‘결정’이라는 명사는 ‘결정하는 행위(술어명사)’와 ‘결정한 내용(결과명사)’의 뜻을 가진 다의어로 규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1)처럼 행위에 방점이 찍혀 있어야만 술어명사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술어명사의 논항에 대해 한 가지 더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예를 볼까요?
(a) 미국의 이라크 공격
(b) 이라크의 공격
(c) 향가의 연구
(d) 그 사람의 생각
(a)에서 행위주는 미국, 대상은 이라크입니다. (b)에서 행위주는 이라크입니다. 별로 헷갈리지 않죠. 그런데 (c)와 (d)를 보면 알쏭달쏭해집니다. (c)에서 ‘향가’는 행위주로 읽히지 않습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화자라면 대부분 향가를 대상으로 인식할 겁니다. 반대로 (d)의 ‘그 사람’은 행위주로 읽힙니다.
(b), (c), (d)는 명사+’-의’+명사로 동일한 형태인데 문법적으로는 각기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통사 구조가 공격, 연구, 생각이라는 개별 어휘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명사 핵의 범위
문장을 만드는 동사와 달리 명사는 명사구를 만들 뿐입니다. 다시 말해 명사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법적 최대 단위가 명사구라는 이야기이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철수가 강아지를 대단히 사랑한다.
(2) 철수의 강아지 사랑은 대단하다.
동사 ‘사랑하-‘는 (1) 문장 전체에 문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술어명사 ‘사랑’은 그 영향력이 명사구에 한정돼 있습니다. (2)의 ‘철수의 강아지 사랑’처럼 명사의 논항이 실현된 명사구를 복합명사구(complex noun phrase)라고 합니다.
분류사와 한국어 수량표현
분류사(classifier)란 어떤 명사의 특정 의미자질 혹은 문법자질을 범주화하여 가리키는 언어형식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Aikhenvald(2000)는 명사 분류사(noun classifier), 수량 분류사(numeral classifier) 등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명사 분류사는 그 분류사가 표시하는 성(sex), 유정성(animacy), 인간성(humanness) 등의 범주로 나뉩니다.
한국어에서는 단위명사가 분류사에 해당합니다. 한국어의 분류사는 부류화보다는 수량화의 기능이 더 크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행인 한 사람
개 두 마리
위 예시에서 ‘사람’, ‘마리’는 각각 사람, 동물의 의미 부류를 가리키는 기능을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둘 모두 수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박진호(2011)는 수량 분류사를 단위사(unitizer)로 부르는데요. 그가 규정한 단위사 종류는 아래와 같습니다.
가. 수 단위사 (count unitizer)
ㄱ. 개체 단위사 (entity unitizer) : 개, 명, 마리, 그루, 송이, 대, 장, 자루
ㄴ. 집합 단위사 (group unitizer) : 켤레, 다스, 톳, 손
ㄷ. 사건 단위사 (event unitizer) : 번, 차례, 회, 바퀴, 순배, 판
나. 양 단위사 (mass unitizer)
ㄱ. 용기 단위사 (container unitizer) : 잔, 병, 컵, 그릇, 숟가락
ㄴ. 도량형 단위사 (measuring unitizer) : 미터, 킬로그램, 리터
한국어 수량표현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1) 명사 + 수사 : 학생 셋
(2) 명사 + 수관형사(수사) + 단위 명사 : 학생 세 명
(3) 수관형사(수사) + 명사 : 세 학생
(4) 수관형사(수사) + 단위명사 + ‘-의’ + 명사 : 세 명의 학생
한국어에선 수량표현을 하는 명사구가 부사구처럼 자리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를 양화사 유동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맥주를 세 병 마셨다. / 나는 세 병 맥주를 마셨다.
셋이 학생이 왔다. / 학생이 셋이 왔다.
위 구문은 사실 이중목적어/이중주어 구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중목적어/이중주어 구문과 달리 전체/부분 등의 관계로 설명할 수 없어서, 국어학자들은 동격 구문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수량표현엔 고유어와 한자어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생활에선 혼용해서 쓰고 있어서 일반적인 규칙으로 만들기가 까다롭습니다.
열(고유어)시 십(한자어)분 십(한자어)초
일 더하기 이는 삼
이십구명 / 일곱명
칠십팔세 / 일흔여덟살
대명사
대명사의 의미적 특징으로 직시(直示)와 대용(代用)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직시란 발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지시의 의미가 드러나는 걸 뜻하고, 대용이란 선행 언어형식이 의미하는 실체나 상황을 가리키는 걸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직시는 텍스트 외적지시, 대용은 내적지시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 직시 : (가방을 보면서)이거 어디서 샀니?
(나) 대용 : 나도 어제 가방을 하나 샀어. 그것을 가져 갈까?
(가)에서 ‘가방’은 명시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지만, 청자는 발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거’가 뜻하는 사물이 ‘가방’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나)에서 화자는 청자가 구입한 가방을 본 적은 없지만, ‘그것’이 뜻하는 사물이 가방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선웅(2012)의 대명사 분류 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위 표에서 부정(不定, indefinite) 개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시대상이 불명확하거나, 불명확하게 표현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ㄱ) (어둠 속에서 물건을 찾다가) 여기 뭐가 만져지네?
(ㄴ) (피자를 먹으며 전화통화) 응, 뭐 좀 먹고 있어.
(ㄱ)의 경우 화자도 청자도 지시하는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그 표현도 불명확하게 이뤄졌습니다. (ㄴ)의 경우 화자는 지시하는 대상(피자)을 명확하게 알고 있지만, 그 표현만 부정칭으로 하고 있습니다. (ㄱ), (ㄴ) 모두 부정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재귀표현
한국어는 대명사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큰 언어입니다. 한국어 명사는 대체로 그대로 재귀표현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시대 얘기만 하세요.
위 문장에서 ‘할아버지’는 재귀대명사가 아닌데도 재귀대명사처럼 쓰였습니다. 이선웅(2012)는 아래와 같이 규정했습니다.
한국어의 재귀표현에는 재귀대명사와 선행 명사 반복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선행 명사의 지시물이 화자보다 높은 대상일수록 문법성이 좋아진다.
재귀대명사에도 높임의 등급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저희 할아버지는 당신 시대 얘기만 하세요.
(2) 당신은 누구요?
(3) 언니는 자기 생각밖에 안 해요.
(4) 언니는 지(저) 생각밖에 안 해요.
‘당신’은 3인칭 재귀대명사로 쓸 때는 극존대 의미를 갖지만, 2인칭일 때는 상대방을 낮춰 부르는 효과를 냅니다. ‘저’는 3인칭 상대방을 낮춰 부를 때 씁니다.
마지막으로 3인칭대명사와 재귀대명사와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 철수는 {그의, 자기} 형이 변호사이다.
(B) 철수는 {*그, 자기}가 직접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A)에서 3인칭대명사 ‘그(의)’, 재귀대명사 ‘자기’를 모두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둘의 차이점은 ‘그’는 철수 말고 다른 이를 가리키는 데 쓰일 수 있지만, ‘자기’는 반드시 철수를 가리킨다는 점입니다. (B)에서는 ‘그’를 쓰면 비문이 됩니다. 강조 용법으로 재귀대명사가 들어가는 자리에 일반 대명사를 절대로 쓰지 않는 것이 한국어 문법 규칙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명사(Noun)와 관련된 여러 개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경희대 이선웅 교수님 강의와 표준국어문법론을 정리하였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명사의 정의
학교문법에 따르면 명사는 일반적으로 사물의 이름을 가리키는 품사입니다. 명사 검증 기준으로 흔히 사용되는 것은 ‘무엇이 무엇이다, 무엇이 어찌한다, 무엇이 무엇을 어찌한다’의 틀에 나타나는 ‘무엇’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는 바로 기능(function)에 초점을 맞춘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명사의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유정명사 : 아버지, 철수, 사람, 개, 고양이, 여우…
무정명사 : 꽃, 풀, 진달래, 돌, 바위, 책상…
현상 : 아침, 낮, 바람, 노을, 번개…
추상적 개념 : 민주주의, 개념, 명제…
아래 예시와 같이 동작성, 상태성의 의미를 지니는 명사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하다’와 어울려 동사, 형용사로 기능합니다. 이와 관련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 술어명사 챕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작성 : 입학, 독립, 합류, 희망, 일출…
상태성 : 곤란, 성실, 신성, 공평, 무한…
이후 설명은 문법적으로 이해하기 까다로운 명사 개념들 소개한 내용입니다.
의존명사, 형식명사
학교문법에 따르면 의존명사는 관형어의 선행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명사를 가리킵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습니다.
*이가 온다. (다른 이가 온다)
*분을 공경해야 한다. (저 분을 공경해야 한다)
20세기 후반의 국어학 연구에서는 의존명사의 의미적 추상성/형식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의존명사의 의미가 추상적/형식적이어서 실제 문맥에서 자립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반드시 의미를 제한/보충하여 주는 선행 요소에 의존하여서만 문맥에 나타나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습니다.
(ㄱ) 갈 데가 없다.
(ㄴ) 그 책을 다 읽는 데 3일 걸렸다.
(ㄷ) 머리 아픈 데 먹는 약
(ㄹ) 내가 준 것을 아직도 갖고 있니?
(ㅁ) 그가 고백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니?
(ㄱ)의 ‘데’는 본래 장소를 뜻하는 말이지만 (ㄴ)과 (ㄷ)에서 그 의미가 매우 추상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ㄹ)의 ‘것’은 본래 구체적 대상을 뜻하는 말이지만 (ㅁ)에서는 추상적 대상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의존명사는 선행 요소에 의존적이면서도 그 의미가 추상적이거나 형식적입니다.
그러나 아래 같은 예들이 있어 분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a) 3개월 이내에 소득 신고를 하지 않은 자(者)
(b) 그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c) 세 살 또래의 어린이가 가장 다루기 어렵다.
(d) 요즘 같은 세상에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다.
(e) 강경 일변도의 정책
(f) 내수를 진작한다는 미명하에
(g) 추상적 사고의 소산
위에서 예로 든 의존명사들은 모두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는 사람, ‘때문’은 이유, ‘또래’는 그 정도의 나이, ‘노릇’은 구실/역할 등을 뜻합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이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식명사 : 의미가 추상적/형식적이면서도 통사적으로 의존적인 명사, 주로 고유어 계통 (예 : ‘데’, ‘것’)
의존명사 : 의미가 구체적이지만 통사적으로는 의존적인 명사, 주로 한자어 계통 (예 : ‘자’, ‘때문’, ‘또래’, ‘노릇’, ‘일변도’, ‘미명’, ‘소산’)
부접명사
부접명사(附接名詞)란 무표지 명사구를 보충어로 반드시 요구하며 그에 직접 결합하는 의존명사의 한 부류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검찰(의) 발표
(2) 국문과(*의) 출신
(3) 빠른 선수 위주(爲主)
(4) *너는 위주가 무엇이냐?
(5) 시험(*의) 걱정
(6) 그 사람은 늘 걱정이 많다.
일반적으로 ‘명사+명사’ 결합에서는 중간에 속격조사 ‘-의’를 삽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1)처럼 ‘검찰 발표’, ‘검찰의 발표’ 둘 다 맞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2)에서는 ‘-의’를 넣으면 비문이 됩니다. ‘출신’이라는 명사는 ‘국문과’라는 명사(구)를 보충어로 반드시 요구하면서 그에 직접 결합하기 때문에 부접명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3)과 (4)에서 ‘위주’는 선행 명사구(빠른 선수) 없이 자립적으로 쓰일 수 없고 선행 명사구와 직접 결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주’는 부접명사입니다.
(5)에선 ‘걱정’이 의존적이지만 (6)에서는 자립적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걱정’은 부접명사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
술어명사
술어명사(predicative noun)는 사건, 행위, 상태 등 의미를 지니는 명사를 뜻합니다. 예컨대 ‘사랑’, ‘답변’은 대표적인 술어명사입니다. 그런데 술어명사는 동사나 형용사처럼 논항이 대체로 필요합니다. 논항이란 문장에서 문법적으로 중심 역할을 하는 핵이 요구하는 필수 성분을 말합니다. 아래 표를 볼까요?
구분 | (가) | (나) |
---|---|---|
1 | 철수의 영희 사랑 | 정부의 야당 질문에 대한 답변 |
2 | 철수가 영희를 사랑한다 | 정부가 야당 질문에 대해 답변하였다 |
위 표에서 1행과 2행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가)-2의 경우 ‘사랑하다’는 동사의 논항은 행위주 ‘철수’, 대상역 ‘영희’로 실현돼 있습니다. (가)-1에서 ‘사랑’이라는 명사의 논항은 (가)-2와 마찬가지로 ‘철수’와 ‘영희’입니다.
(나)-2의 경우 ‘답변하다’는 동사의 논항은 행위주 ‘정부’, 대상역 ‘야당 질문’으로 실현돼 있습니다. (나)-1에서 ‘답변’이라는 명사의 논항은 (나)-2와 마찬가지로 ‘정부’, ‘야당 질문’입니다.
술어명사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위 표에서처럼 술어명사의 논항이 그에 대응하는 용언 서술어가 형성하는 문장의 논항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어 술어명사의 대부분은 논항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부류의 다른 예로는 ‘건강’, ‘공부’, ‘운동’, ‘여행’ 등이 있습니다.
물론 그 수는 작지만 예외가 있기는 합니다. 다시 말해 논항을 요구하지 않는 술어명사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비가 그친 후 출발하자.
‘비’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이라는 실체와 ‘물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짐’이라는 사건을 나타낸다는 것이죠. 위 예문의 ‘비’는 사건에 가까운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 ‘비’는 일반적인 술어명사와 달리 행위주, 대상역 등 논항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류의 예로는 ‘눈’, ‘천둥’, ‘번개’ 등이 있습니다.
논항을 요구하지 않는 술어명사의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구분 | (A) | (B) |
---|---|---|
1 | 철수는 일을 마친 후 바로 귀가하였다 | 영희는 시험을 보는 도중에 잠이 들었다 |
2 | *철수의 일 도중에 영희가 찾아왔다 | *영희의 시험 중에 철수가 들어왔다 |
위 예시에서 ‘일’과 ‘시험’은 사건성, 행위성을 확인할 수 있지만 논항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행위주 논항이 실현된 명사구 ‘철수의 일 도중’, ‘영희의 시험 중’은 되레 비문이 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선웅(2012)은 술어 성격을 지니는 명사를 술어명사라고 규정하는데요. 그는 술어를 아래와 같이 정의합니다.
술어(predicator)란 논항구조를 가지거나 상적특성을 지니면서 사건, 행위, 상태 등의 의미적 실체를 나타내는 언어 형식이다.
동일한 명사가 술어명사와 결과명사 두 역할 모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건 표현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술어명사, 사건/행위의 결과 표현에 강조점이 있다면 결과명사로 분류되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술어명사 : 결정 후 생각해 보자.
(2) 결과명사 : 국민들은 정부의 결정에 격노하였다.
정희정(2000)은 ‘결정’이라는 명사는 ‘결정하는 행위(술어명사)’와 ‘결정한 내용(결과명사)’의 뜻을 가진 다의어로 규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1)처럼 행위에 방점이 찍혀 있어야만 술어명사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술어명사의 논항에 대해 한 가지 더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예를 볼까요?
(a) 미국의 이라크 공격
(b) 이라크의 공격
(c) 향가의 연구
(d) 그 사람의 생각
(a)에서 행위주는 미국, 대상은 이라크입니다. (b)에서 행위주는 이라크입니다. 별로 헷갈리지 않죠. 그런데 (c)와 (d)를 보면 알쏭달쏭해집니다. (c)에서 ‘향가’는 행위주로 읽히지 않습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화자라면 대부분 향가를 대상으로 인식할 겁니다. 반대로 (d)의 ‘그 사람’은 행위주로 읽힙니다.
(b), (c), (d)는 명사+’-의’+명사로 동일한 형태인데 문법적으로는 각기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통사 구조가 공격, 연구, 생각이라는 개별 어휘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명사 핵의 범위
문장을 만드는 동사와 달리 명사는 명사구를 만들 뿐입니다. 다시 말해 명사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법적 최대 단위가 명사구라는 이야기이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철수가 강아지를 대단히 사랑한다.
(2) 철수의 강아지 사랑은 대단하다.
동사 ‘사랑하-‘는 (1) 문장 전체에 문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술어명사 ‘사랑’은 그 영향력이 명사구에 한정돼 있습니다. (2)의 ‘철수의 강아지 사랑’처럼 명사의 논항이 실현된 명사구를 복합명사구(complex noun phrase)라고 합니다.
분류사와 한국어 수량표현
분류사(classifier)란 어떤 명사의 특정 의미자질 혹은 문법자질을 범주화하여 가리키는 언어형식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Aikhenvald(2000)는 명사 분류사(noun classifier), 수량 분류사(numeral classifier) 등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명사 분류사는 그 분류사가 표시하는 성(sex), 유정성(animacy), 인간성(humanness) 등의 범주로 나뉩니다.
한국어에서는 단위명사가 분류사에 해당합니다. 한국어의 분류사는 부류화보다는 수량화의 기능이 더 크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행인 한 사람
개 두 마리
위 예시에서 ‘사람’, ‘마리’는 각각 사람, 동물의 의미 부류를 가리키는 기능을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둘 모두 수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박진호(2011)는 수량 분류사를 단위사(unitizer)로 부르는데요. 그가 규정한 단위사 종류는 아래와 같습니다.
가. 수 단위사 (count unitizer)
ㄱ. 개체 단위사 (entity unitizer) : 개, 명, 마리, 그루, 송이, 대, 장, 자루
ㄴ. 집합 단위사 (group unitizer) : 켤레, 다스, 톳, 손
ㄷ. 사건 단위사 (event unitizer) : 번, 차례, 회, 바퀴, 순배, 판
나. 양 단위사 (mass unitizer)
ㄱ. 용기 단위사 (container unitizer) : 잔, 병, 컵, 그릇, 숟가락
ㄴ. 도량형 단위사 (measuring unitizer) : 미터, 킬로그램, 리터
한국어 수량표현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1) 명사 + 수사 : 학생 셋
(2) 명사 + 수관형사(수사) + 단위 명사 : 학생 세 명
(3) 수관형사(수사) + 명사 : 세 학생
(4) 수관형사(수사) + 단위명사 + ‘-의’ + 명사 : 세 명의 학생
한국어에선 수량표현을 하는 명사구가 부사구처럼 자리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를 양화사 유동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맥주를 세 병 마셨다. / 나는 세 병 맥주를 마셨다.
셋이 학생이 왔다. / 학생이 셋이 왔다.
위 구문은 사실 이중목적어/이중주어 구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중목적어/이중주어 구문과 달리 전체/부분 등의 관계로 설명할 수 없어서, 국어학자들은 동격 구문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수량표현엔 고유어와 한자어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생활에선 혼용해서 쓰고 있어서 일반적인 규칙으로 만들기가 까다롭습니다.
열(고유어)시 십(한자어)분 십(한자어)초
일 더하기 이는 삼
이십구명 / 일곱명
칠십팔세 / 일흔여덟살
대명사
대명사의 의미적 특징으로 직시(直示)와 대용(代用)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직시란 발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지시의 의미가 드러나는 걸 뜻하고, 대용이란 선행 언어형식이 의미하는 실체나 상황을 가리키는 걸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직시는 텍스트 외적지시, 대용은 내적지시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 직시 : (가방을 보면서)이거 어디서 샀니?
(나) 대용 : 나도 어제 가방을 하나 샀어. 그것을 가져 갈까?
(가)에서 ‘가방’은 명시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지만, 청자는 발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거’가 뜻하는 사물이 ‘가방’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나)에서 화자는 청자가 구입한 가방을 본 적은 없지만, ‘그것’이 뜻하는 사물이 가방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선웅(2012)의 대명사 분류 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위 표에서 부정(不定, indefinite) 개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시대상이 불명확하거나, 불명확하게 표현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ㄱ) (어둠 속에서 물건을 찾다가) 여기 뭐가 만져지네?
(ㄴ) (피자를 먹으며 전화통화) 응, 뭐 좀 먹고 있어.
(ㄱ)의 경우 화자도 청자도 지시하는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그 표현도 불명확하게 이뤄졌습니다. (ㄴ)의 경우 화자는 지시하는 대상(피자)을 명확하게 알고 있지만, 그 표현만 부정칭으로 하고 있습니다. (ㄱ), (ㄴ) 모두 부정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재귀표현
한국어는 대명사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큰 언어입니다. 한국어 명사는 대체로 그대로 재귀표현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시대 얘기만 하세요.
위 문장에서 ‘할아버지’는 재귀대명사가 아닌데도 재귀대명사처럼 쓰였습니다. 이선웅(2012)는 아래와 같이 규정했습니다.
한국어의 재귀표현에는 재귀대명사와 선행 명사 반복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선행 명사의 지시물이 화자보다 높은 대상일수록 문법성이 좋아진다.
재귀대명사에도 높임의 등급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저희 할아버지는 당신 시대 얘기만 하세요.
(2) 당신은 누구요?
(3) 언니는 자기 생각밖에 안 해요.
(4) 언니는 지(저) 생각밖에 안 해요.
‘당신’은 3인칭 재귀대명사로 쓸 때는 극존대 의미를 갖지만, 2인칭일 때는 상대방을 낮춰 부르는 효과를 냅니다. ‘저’는 3인칭 상대방을 낮춰 부를 때 씁니다.
마지막으로 3인칭대명사와 재귀대명사와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 철수는 {그의, 자기} 형이 변호사이다.
(B) 철수는 {*그, 자기}가 직접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A)에서 3인칭대명사 ‘그(의)’, 재귀대명사 ‘자기’를 모두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둘의 차이점은 ‘그’는 철수 말고 다른 이를 가리키는 데 쓰일 수 있지만, ‘자기’는 반드시 철수를 가리킨다는 점입니다. (B)에서는 ‘그’를 쓰면 비문이 됩니다. 강조 용법으로 재귀대명사가 들어가는 자리에 일반 대명사를 절대로 쓰지 않는 것이 한국어 문법 규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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