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최근 미래 먹거리로 빅데이터,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21세기 급변하는 시대에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제 나름의 견해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2020년 2월 7일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열린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초등교육과정 운영 혁신 방안 연구 정책간담회’에서 발표된 내용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Table of contents
인공지능이란 : Deep Learning
인공지능(Artificial Intenligence)이란 인지, 학습 등 인간의 지적 능력의 일부 또는 전체를 컴퓨터가 계산(computation) 가능한 형태로 구현한 총체를 가리킵니다. 사람 말을 알아 듣는 챗봇, 얼굴 인식 및 이미지 분류 등 다양한 태스크를 수행하는 데 인공지능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여러 분야에 쓰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대중적인 용어에 가깝고요. 학계에서는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딥러닝은 여러 비선형 변환기법의 조합을 통해 복잡한 자료(data)들의 패턴을 컴퓨터로 하여금 찾아내게 하는 기법입니다.
딥러닝이 주목받은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 비전 분야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ILSVRC(ImageNet Large-Scale Visual Recognition Challenge)의 2012년 대회에서 제프리 힌튼 교수팀의 AlexNet이 top 5 test error 기준 15.4%를 기록해 2위(26.2%)를 큰 폭으로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게 사실 좀 대단한 것인데요. 이미지를 분류하는 문제는 그동안 연구자들이 한땀한땀 만든 룰(rule)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미지 분류를 잘하려면 이미지를 어떻게 가공하고 전처리하는지 등의 특징 추출(feature extraction) 관련 노하우가 많이 필요했었는데요. 딥러닝으로 사람 개입없이도 이미지 분류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림1 deep learning
딥러닝이 폭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또다른 계기는 2016년 개발된 알파고(alpha-go)입니다. 바둑은 고려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10^{170}$개나 된다고 합니다.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는 것은 난공불락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세돌 9단과의 승부에서 알파고는 5전 4승 1패를 기록했습니다. 이때 알파고에 적용된 기법이 바로 딥러닝입니다.
알파고를 만든 연구진은 알파고에게 바둑을 잘 두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알파고 연구진의 대부분이 바둑 자체를 둘 줄 몰랐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연구진은 알파고로 하여금 과거 바둑기사들의 수많은 기보(학습 데이터)를 주고, 승률이 최대화되도록 그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도록 했습니다.
컴퓨터에게 문제를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그 해결 절차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기존 알고리즘(algorithm)과 달리, 딥러닝은 문제 정의와 그 해결 절차를 두루뭉술하게 하더라도 다량의 데이터를 모델에 주어서 그 패턴을 학습하도록 유도합니다. 이에 딥러닝을 데이터 중심 알고리즘(data-driven algorithm)이라고 정의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습니다.
딥러닝이 꽃피게 된 계기는 빅데이터, 컴퓨팅 파워, 알고리즘 세 가지 덕분입니다. 저장 기술의 발달로 딥러닝 학습데이터에 쓸 수 있는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CPU/GPU 성능이 비약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딥러닝 관련 알고리즘도 크게 개선돼 학습 효율이 높아졌습니다.
이 덕분에 컴퓨터 비전, 자연어 처리, 기계 번역, 음성 인식, 이미지 생성 및 문서 요약 등에 딥러닝이 두루 쓰이게 되었습니다. 2018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이 시대 화두로 ‘4차 산업혁명’이 제시되면서, 딥러닝은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연구의 현재
그림2는 arxiv(https://arxiv.org)에 제출되는 인공지능 관련 논문의 연간 제출량을 나타냅니다. arxiv는 미국의 코넬대학교에서 1991년 만든 전자논문 아카이브입니다. 학술지 게재 전 원고(preprint)를 먼저 이곳에 내는 것이 관행입니다. 리뷰 기간동안 다른 저자가 같은 주제로 논문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관련 논문은 모두 arxiv에 제출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림2를 보면 인공지능 관련 논문의 출판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 붉은 실선 표시)’보다 빠른 속도입니다. 2018년 들어서는 매일 100편 안팎의 논문이 제출되고 있습니다. 같은해 2009년 대비 30배 넘는 논문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림2 인공지능 관련 논문의 출판 증가세
가장 주요한 배경은 ‘오픈소스(open source)’ 철학에 있다고 봅니다. 오픈소스란 코드나 데이터를 공개하여 전체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걸 핵심으로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버그 수정, 기능 추가, 코드 테스트, 오타 수정, 번역, 가이드 문서 작성, 디자인 작업, 의견 제시 등의 활동이 있습니다. 특정 지역/집단 내에서만 생산, 소비되었던 지식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인공지능 연구/개발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됐습니다.
오픈소스가 널리 자리잡게 된 것은 인공지능 연구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연구자들(제프리 힌튼, 얀 르쿤, 요슈아 벤지오 등)이 오픈소스 생태계를 적극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글, 페이스북 같은 굴지의 기업들도 이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연구 논문이나 그에 관계된 소스코드, 심지어는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실적들을 이 분야 연구 발전을 위해 대중에 공개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일례로 구글은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인간의 독해 능력을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BERT: Pre-training of Deep Bidirectional Transformers for Language Understanding
를 개발 완료와 동시에 소스 코드와 논문, 그리고 모델을 대중에 공개하였습니다. 덕분에 자연어 처리 분야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관련 연구도 그만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림3은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페이페이 리 교수가 이끌고 있는 미국 스탠포드대학 산하 리서치 기관 ‘Human-Centered Aritificial Inteligence’에서 지난해 말 발표한 ‘2019 AI Index’의 일부입니다. 국가별로 인공지능 관련 논문 출판량을 따져봤는데요. 중국과 미국, 인도가 top3를 이끌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영국, 독일, 일본에 이어 7위를 차지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2018년 대한민국 명목 GDP 세계 12위, 세계은행)를 감안하면 그럭저럭 선방하고 있습니다.
그림3 국가별 인공지능 관련 논문 출판량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양적인 통계에 불과하고요. 양이 질을 담보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게다가 선발 주자인 중국과 미국의 경우 그 양에 있어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네이버 클로바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
네이버는 인공지능 조직 클로바(Clova)를 통해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광학문자인식(OCR), 한국어 자연어 처리 등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1. 광학문자인식(OCR)
2. 음성합성
3. 대화엔진
4. 손글씨 생성
인공지능 기술의 저변 확대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요? 이를 살펴보려면 웹(web) 기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한 인터넷은 전세계적으로 ‘벤처 붐’을 일으켰습니다. 미국 구글, 일본 야후, 한국 네이버와 다음 등 인터넷 플랫폼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통신사와 컨텐츠 기업, 게임회사 등도 상당한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사람은 연결되고 지식은 공유되었습니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가 웹 기반 서비스나 검색(search)을 지렛대 삼아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곧 일자리 증가로 귀결되었습니다. 다음 표1은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 국내 IT서비스 종사자 수의 연도별 종사자 수를 나타낸 것입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표1 국내 IT서비스 종사자 수 (단위: 명,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웹 기술에 대한 장벽 역시 낮아졌습니다. 이전에는 소수의 개발자나 연구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술, 도구들이 공개되어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도커(docker), 쿠버네티스(Kubernetes) 등 백엔드(backend), 앵귤러(Angular), 리액트(react) 등 프론트엔드(frontend), MySQL 등 데이터베이스, 워드프레스 등 웹사이트 퍼블리싱 툴, 아마존 웹서비스(Amazon Web Services) 등 클라우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편리한 도구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웹 기술에 관심 있는 누구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저렴하고 편리하게 자신의 웹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것입니다.
인공지능, 딥러닝 분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는 일부 대학 연구실에서만 실험용, 소규모로 만들었던 모델들을 이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딥러닝 모델을 만들 때 미분(derivative) 과정을 일일이 정의해 주어야 하는데요. 모델을 만드는 사람이 순전파(forward) 계산 과정을 정의해두기만 하면 이를 자동으로 미분해서 학습해주는 프레임워크가 등장한 것입니다. 구글의 텐서플로(Tensorflow)와 페이스북의 파이토치(Pytorch)가 가장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상업적으로도 무료로 쓸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몇 번의 클릭만으로 딥러닝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을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그림6은 지난해 구글에서 공개한 TensorflowJS라는 서비스인데요. 사용자가 몇 개의 사진과 그에 따른 정답(학습데이터)을 입력하고 간단한 조작으로 모델을 정의하기만 하면 학습부터 예측까지 전체 과정을 시각화해서 보여줍니다. 기존 웹 서비스에 붙여서 쓰는 과정도 쉽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인공지능이나 딥러닝 기술을 전혀 몰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림6 TensorflowJS 툴
인공지능 기술의 장벽은 낮아지고 저변은 넓어졌습니다. 선두에 있는 연구자들은 오픈소스 철학에 발맞춰 자신의 연구 성과와 코드, 데이터를 대중에 공개하는 추세입니다. 이에 힙입어 연구 성과나 논문 출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수준의 대기업들은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딥러닝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들을 잇달아 런칭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루트에서 이렇게 선순환을 이루면서 인공지능은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딥러닝이 이제는 생활이 된 것입니다. 웹 기술이 우리 삶을 바꿔놓았던 것처럼요.
인공지능의 한계 : Causality
인공지능, 즉 딥러닝이 만능처럼 보이지만 한계 역시 분명합니다. 이와 관련해 게리 마커스(Gary F. Marcus) 미국 뉴욕대 교수의 비판을 주목할 만합니다. 그의 견해는 딥러닝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널리 공유되고 있습니다.
마커스에 따르면 딥러닝은 학습 과정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으며 그 결과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딥러닝을 블랙박스(blackbox) 모델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딥러닝 모델은 데이터 안에 있는 패턴을 스스로 찾아내게끔 하는데, 모델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인간 개입 없이 학습되기 때문에 이 모델이 왜 그런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인간이 통제/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딥러닝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며, 딥러닝은 학습 데이터 이외의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합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딥러닝이 인간의 상식과 추론 능력을 스스로 내재화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관련해 게리 마커스는 지난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테슬라 무인 자율주행차에 탑승한 보조 운전자가 사망한 사고를 언급합니다. 자율주행 모드로 고속도로를 운행 중이던 테슬라 모델S가 좌회전하는 흰색 트레일러를 밝게 빛나는 하늘로 오인식해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그대로 충돌하면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림5 2016년 발생한 테슬라 무인자동차 사고 (출처: 매일경제신문)
문제는 자율주행차(딥러닝)가 당시 왜 브레이크를 잡지 않았는지 추적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맑게 갠 날 흰색 트레일러는 밝게 빛나는 지표면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상식을 가진 사람 운전자였다면 자율주행 학습데이터에 이런 상황이 전혀 없었더라도(혹은 해당 케이스의 학습데이터가 극소수였어도) 현명하게 대처해 급제동을 걸었을 수 있었습니다.
딥러닝 대부 요슈아 벤지오가 최근 자주 언급하는 주제가 바로 인과관계(causality)입니다. 딥러닝은 주로 상관관계(correlation)를 봅니다. 학습데이터를 분석하면 맥주와 기저귀가 같이 팔리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아버지들이 마트에 방문해 동시에 두 제품을 구매하는 것)를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장점 중 하나는 추론(inference) 능력입니다. 게리 마커스가 딥러닝의 단점으로 언급한 상식, 범용성, 적은 데이터로 학습 등 인공지능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과관계를 딥러닝에 내재화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해석 가능한 인공지능(interpretable AI), 인과관계(causality)와 추론 모델링 등이 인공지능 관련 새로운 연구주제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딥러닝이 가진 유연한 패턴 인식(pattern recognition) 성질에 더해 인간의 고도화된 지적 능력(추론이나 상식)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주도권은 이러한 연구 분야에서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독창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과 교육
지금까지 인공지능의 개념, 현재 기술 수준과 그 한계 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 텐데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교육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이 챕터에서는 교육 내용과 방법보다는 인공지능 인재에 요구되는 능력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인공지능이 화두가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 기술자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모든 사람이 기계를 만들 줄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1990년대 중반 전후로 ‘닷컴 혁명’이 있었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웹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다만 기계와 웹을 이해하고 써먹을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 삶은 좀 더 풍요로워질 겁니다.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이에 본 챕터에서는 모든 학생들을 위한 보편적인 인공지능 교육, 수월성 인재들을 위한 교육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보편적 교육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딥러닝 관련 지식/연구들이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제가 연구실에 있었을 때는 반년 전 출간된 논문도 최신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요즘은 석달만 지나도 좀 옛날 지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쏟아지는 논문을 모두 읽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무의미합니다. 결국 중요한 지식만 선별적으로, 그것도 빠르게 흡수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 될텐데요. 이는 유통, 제조 등 딥러닝 이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엄청나게 많은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자라고 있습니다. 이에 세 가지 능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필요한 지식과 불필요한 지식을 구분하는 능력
-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
- 타인과 협업하는 능력
3번과 관련해 오픈소스 철학을 다시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픈소스란 자신의 지적 생산물을 타인에 공개하거나 공유함으로써 해당 학계 내지 인류 전체의 지식 생산에 기여하려는 활동을 통칭해서 일컫는 말입니다. 인공지능 관련 오픈소스 생태계는 미국의 분산 버전 관리 툴 ‘깃허브(GitHub)’를 중심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그 활동은 대개 코드 저장소(repository) 단위로 이뤄지는데요. 코드의 개발과 버그 수정은 물론 문서 작성, 번역, 오타 수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이 이뤄집니다. 이 활동은 불특정 다수에 의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실시됩니다.
널리 쓰이고 있는 딥러닝 프레임워크 ‘파이토치(PyTorch)‘의 경우 코드 개발과 개선에 기여한 사람(contributor)이 2020년 1월말 현재 1263명, 코드 커밋 수는 2만3684건에 달합니다. 1만2000개 넘는 이슈(게시물)가 작성되어 수많은 개발자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소통하고 있습니다. 자신만 아는 노하우를 전세계 개발자들에게 알리고 해당 지식은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매개로 널리 전파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 전 과정이 전지구적으로 빠르게 순환하고 있습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협업 능력입니다.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이해/공감하는 능력, 타인과 역할을 나누고 그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능력 등이 그 세부 항목이 될 겁니다.
수월성 교육
인공지능 코어 기술을 능동적으로 다룰 줄 아는 수월성 인재들에 대한 교육 역시 중요합니다. 인공지능 관련 기술의 주도권은 국가, 기업별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앞서 언급한 인공지능 기술의 한계를 보완하고 국부를 창출할 핵심 인재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인공지능 관련 수월성 교육을 위해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할 기초 지식은 다음과 같이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선형대수학 (linear algebra)
- 미적분학 (calculus)
- 확률론 (probability theory)
- 최적화 이론 (mathematical optimization)
- 알고리즘, 자료구조 등 컴퓨터 사이언스 일반 지식
딥러닝은 기본적으로 벡터와 행렬의 사칙 연산, 그리고 미분에 기반합니다. 데이터를 입력 받아 연구자가 정의한 손실(loss)을 최소화하는 방향(gradient)을 구해 모델 전체를 업데이트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딥러닝 모델과 데이터를 확률 모델(probability model) 관점에서 모델링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인공지능 연구자를 키워내려면 벡터와 행렬을 다루는 선형대수학, 미적분학, 확률론은 물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적화 이론까지 모두 가르쳐야 합니다. 이밖에 알고리즘, 자료구조 등 컴퓨터 사이언스 일반 지식도 프로덕트(product) 레벨에서는 중요한 기초 지식입니다.
위의 지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초등 수학의 핵심 개념과 내용 등을 뽑아 봤습니다. 이는 표2와 같습니다. 교육에 문외한이라 분류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초등 수학 대부분의 영역이 인공지능 연구 기초 지식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컨대 ‘수의 체계’, ‘수의 연산’, ‘양의 측정’, ‘규칙성과 대응’은 선형대수학, 미적분학, 최적화 이론, ‘자료’와 ‘가능성’은 확률론에 대응합니다.
표2 2015년 개정 교육과정 - 초등 수학
핵심 개념 | 내용 | 내용 요소 |
---|---|---|
수의 체계 | 수는 사물의 개수와 양을 나타내기 위해 발생했으며 자연수, 분수, 소수가 사용된다 | 1~2학년: 네 자리 이하의 수 3~4학년: 다섯 자리 이상의 수, 분수, 소수 5~6학년: 약수와 배수, 약분과 통분, 분수와 소수의 관계 |
수의 연산 | 자연수에 대한 사칙계산이 정의되고 이는 분수와 소수의 사칙계산으로 확장된다 | 1~2학년: 두 자리 수 범위의 덧셈과 뺄셈, 곱셈 3~4학년: 세 자리 수의 덧셈과 뺄셈, 자연수의 곱셈과 나눗셈, 분모가 같은 분수의 덧셈과 뺄셈, 소수의 덧셈과 뺄셈 5~6학년: 자연수의 혼합 계산, 분모가 다른 분수의 덧셈과 뺄셈, 분수의 곱셈과 나눗셈, 소수의 곱셈과 나눗셈 |
양의 측정 | 생활 주변에는 다양한 속성이 존재하며 그에 따른 단위를 이용하여 양을 수치화한다 | 1~2학년: 양의 비교, 시각과 시간, 길이 3~4학년: 시간, 길이, 들이, 무게, 각도 5~6학년: 원주율, 평면도형의 둘레, 넓이, 입체 도형의 겉넓이, 부피 |
규칙성과 대응 | 규칙성은 생활 주변의 여러 현상을 탐구하는 데 중요하며 함수 개념의 기초가 된다 | 1~2학년: 규칙 찾기 3~4학년: 규칙을 수나 식으로 나타내기 5~6학년: 규칙과 대응, 비와 비율, 비례식과 비례 배분 |
자료 | 자료의 수집, 분류, 정리, 해석은 통계의 주요 과정이다 | 1~2학년: 분류하기, 표, 그래프 3~4학년: 간단한 그림그래프, 막대 그래프, 꺾은선그래프 5~6학년: 평균, 그림그래프, 띠그래프, 원그래프 |
가능성 | 가능성을 수치화하는 경험은 확률의 기초가 된다 | 5~6학년: 가능성 |
제가 놀랐던 점은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초등 수학에서 핵심 개념별로 중점적으로 가르치려는 기능들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언급했던 4차 산업혁명 시대 중요 능력들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 수의 체계, 수의 연산 : (수)세기, (수)읽기, (수)쓰기, 이해하기, 비교하기, 계산하기, 어림하기, 설명하기, 표현하기, 추론하기, 토론하기, 문제해결하기, 문제만들기
- 양의 측정 : 비교하기, 구별하기, (시각)읽기, 표현하기, 이해하기, 계산하기, 측정하기, 어림하기, 그리기, 추론하기, 설명하기, 활용하기, 문제해결하기
- 규칙성과 대응 : 배열하기, 표현하기, 추측하기, 규칙찾기, 규칙정하기, 설명하기, 이해하기, 확인하기, 문제해결하기
- 자료, 가능성 : 분류하기, (개수)세기, 표만들기, 그래프그리기, 표현하기, 수집하기, 정리하기, 해석하기, 설명하기, 이해하기, 활용하기, 비교하기, 문제해결하기
견해에 따라서는 일부 단원의 보충이나 삭제를 염두에 둘 수 있겠습니다마는, 현교육과정에 기술된 초등 수학의 핵심 개념과 기능을 제대로 가르치기만 해도 인공지능 수월성 교육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 보편적 인재상과 관련해 언급한 ‘필요한 지식과 불필요한 지식을 구분하는 능력’,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 ‘협업 능력’도 위의 기능과 직접 관련을 갖거나 연장선상에서 가르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닌가 합니다.
초등 수학은 다른 과목과 긴밀하게 연관이 있을 것이고, 교사의 교육 활동은 교과 외에 다양(급식, 생활 지도 등)할 것이므로 교육과정을 크게 흔들지 않는 선에서 교사의 기존 교육 활동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인공지능 교육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