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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형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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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한국어의 9품사 가운데 하나인 관형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경희대 이선웅 교수님 강의와 ‘왜 다시 품사론인가(남기심 외, 커뮤니케이션북스)’, ‘표준국어문법론(남기심&고영근, 탑출판사)’을 정리하였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정의 및 핵심 기능

학교문법에 따르면 관형사(冠形詞)란 체언 앞에서 그 체언의 뜻을 분명하게 제한하는 품사입니다. 국어 관형사 가운데는 (1)과 같은 고유어는 얼마되지 않고 (2)와 같은 한자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1) 이 거리에는 집과 집이 서로 이웃해 있다.

(2) 서울대학교는 구(舊) 경성제국대학을 모태로 하여 발족되었다.

관형사는 체언 이외의 품사는 꾸미는 일이 없습니다. 관형사가 나란히 놓여 있을 때는 다음처럼 앞의 관형사가 뒤의 관형사를 꾸미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의 예에서 ‘저’, ‘이’는 명사구 ‘새 책’과 ‘헌 구두’를 꾸미므로 관형사의 궁극적인 수식대상은 명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이 누구의 책이냐?

구두가 제 것입니다.

종류

학교문법에서 규정하는 관형사에는 성상관형사(性狀冠形詞), 수관형사(數冠形詞), 지시관형사(指示冠形詞)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성상관형사는 꾸밈을 받는 명사의 모양,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관형사를 가리킵니다. 수관형사는 주로 단위성 의존명사와 결합하여 사물의 수나 양을 나타내는 관형사입니다. 지시관형사는 특정한 대상을 지시하여 가리키는 관형사입니다. 각각의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상관형사 : (1) 고유어계 : (집/옷/해..), (집/옷/책…), (말/고생/생각…), (집/말/사람…) (2) 한자어계 : 순(純)(이익/한국말/유럽산…), 호(好)(결과/영향…), 구(舊)(관립 한성고등학교/국제우체국…), 대(大)(사건/건축/문제…), 장(長)(거리/기간…), 고(高)(물가/비행…), 주(主)(세력/원인…), 정(正)(교수/교사…), 이(異)(민족…)

수관형사 : (1) 한, 두, 세(석/서), 네(넉/너), 다섯(닷), 여섯(엿),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한, 열 두, 열 세(석/서), 열 네(넉/너),…,스무… (2) 한두, 두세, 서너, 두서너… (3) 일이(一二), 이삼(二三), 삼사(三四)… (4) 여러, 모든, 온, 온갖, 갖은, 반(半), 전(全)

지시관형사 : (1) 고유어계 : 이, 그, 저, 요, 고, 조, 이런, 그런, 저런, 다른(他) (2) 한자어계 : 귀(貴)(가족…), 본(本)(연구소…), 동(同)(시험장…), 현(現)(국무총리…), 전(前)(교육부장관…), 모(某)(년/월/일)

특성

관형사로 분류되는 형태 가운데에는 접두사, 어근 등 다른 형태 범주뿐만 아니라 명사, 수사, 형용사, 부사 등 다른 품사와도 쉽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그 수도 다른 품사 대비 적습니다. 한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에서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단어 부류이기도 하고요. 이 때문에 관형사를 독자 품사로 분리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학자들도 꽤 있습니다.

어쨌든 학교문법에서는 관형사를 독자 품사로 설정하고 있는데요. 관형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형태적 : 조사나 어미가 결합할 수 없는 불변어이다.

통사적 : 명사를 수식하는 기능을 하지만, 자립성이 약해서 문장 안에서 단독으로 쓰이지 못한다.

의미적 : 피수식어인 체언의 뜻을 분명하게 제한한다.

하지만 명사라고 해서 모두 관형사의 꾸밈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관형사가 고유명사, 의존명사, 추상명사, 대명사 따위를 수식하는 데는 다음과 같이 제약이 따릅니다.

*새 철수

*헌 데

*그 너

단어형성의 기본 원리

단어는 다음 예시와 같이 그 짜임새가 단일할 수도 있고 복합적일 수도 있습니다.

(가) 단일어 : 집, 신, 높다…

(나) 파생어 : 지붕, 덧신, 드높다…

(다) 합성어 : 집안, 짚신, 높푸르다…

(가)와 같이 그 짜임새가 단일한 단어를 단일어라고 하고, (나) (다)와 같이 그 짜임새가 복합적인 말을 복합어라고 합니다. 복합어의 형성에 나타나는 실질형태소어근(root)이라고 하고 형식형태소접사(affix)라고 합니다. 중심적인 의미가 어휘적인 형태소를 실질형태소, 실질적이지 않고 문법적이면 형식형태소라고 합니다. (나)처럼 실질형태소에 형식형태소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을 파생어(derived word), (다)처럼 실질형태소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을 합성어(compound word)라고 합니다.

관형사 vs 접사

그렇다면 다음의 ‘맨’은 관형사로 분류해야 할까요? 아니면 접사로 해야할까요? 관형사와 접사 모두 자립성이 약해 다른 단어와 동시에 쓰이고, 같이 나타나는 다른 형태소의 의미를 분명하게 제한한다는 점에서 알쏭달쏭합니다.

(ㄱ) 맨손, 맨주먹, 맨발, 맨머리, 맨몸, 맨밥, 맨입…

(ㄴ) 맨 꼭대기, 맨 위, 맨 밑, 맨 아래, 맨 끝, 맨 꼬리, 맨 나중, 맨 뒤, 맨 앞, 맨 처음…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께서는 어휘적 의미에 집중해 (ㄱ)을 접사, (ㄴ)을 관형사로 분류했습니다. (ㄱ)처럼 ‘의관이나 또 다른 것으로 꾸미지 아니하다’로 쓰였을 경우 접두사, (ㄴ)처럼 ‘가장(最)’으로 사용했다면 관형사에 해당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은 불분명할 뿐더러 ‘맨’에만 쓸 수 있어 모든 단어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어휘적 의미 이외에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결합제약’입니다. 즉 관형사는 문장에서 다른 명사들과 비교적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으나 접사는 제한된 어근과만 결합한다는 얘기입니다.

위 예시에서 (ㄱ)의 의미로 ‘맨’을 쓸 경우 ‘맨눈’, ‘맨팔’은 되지만 *맨배, *맨코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맨’은 아무 명사에나 붙는 것이 아니어서 결합제약이 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ㄴ)의 의미로 ‘맨’을 사용한다면 ‘맨 먼저’와 같이 대부분의 명사에 ‘맨’을 쓸 수 있어 결합제약이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관형사와 접사를 가르는 또다른 기준은 ‘중간에 다른 단어를 삽입할 수 있는지’ 여부가 될 수 있습니다. 중간 삽입이 가능하다면 관형사, 불가능하다면 접사로 나누자는 의견입니다. 아래 예시에서 (ㄱ)은 중간 삽입이 불가능하지만 (ㄴ)은 가능합니다.

(ㄱ) 맨눈 / *맨(좋은)눈

(ㄴ) 맨 먼저 / 맨 (처음 온 사람) 먼저

한편 ‘맨 먼저’를 발음할 때는 ‘맨’과 ‘먼저’ 사이에 휴지(休止)를 둘 수 있지만 ‘맨눈’을 발음할 땐 하나의 단위로 소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중간 삽입 기준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요컨대 결합제약과 중간삽입 기준 두 가지를 고려할 때 (ㄱ)은 접사, (ㄴ)은 관형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을 모든 상황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서 관형사와 접사의 차이는 결국 국어 화자의 직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 의견도 일부 있기는 합니다.

관형사 vs 어근

관형사와 어근을 나누는 것도 그리 분명하지 않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해 ‘새’와 관련된 표제어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새-것, 새-해, 새-집, 새-색시, 새-봄

사전 편집자는 위 예시에서 ‘새’와 ‘것’, ‘해’, ‘집’, ‘색시’, ‘봄’은 그보다 큰 단위의 명사를 형성하는 데 참여하는 어근의 하나로 분석한 것입니다. 바꿔 말해 위 예시들을 ‘어근(새) + 어근’ 구조인 합성어로 보고 표제어로 등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래 예시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표제어로 등록돼 있지 않은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전 편집자는 아래 예시들을 ‘관형사(새) + 명사’의 일반적인 결합구조로 보고 별도 표제어로 등록하지 않은 셈이죠.

새 신발, 새 구두, 새 책, 새 옷, 새 시계

실제로 문법서나 사전마다 관형사와 어근 구분이 제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그만큼 관형사와 어근을 가리는 게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새해’, ‘새색시’처럼 언중들이 해당 단어를 대부분 한 단위로 인식하고 사용한다면 이때의 ‘새’를 어근으로 분석하는 것이 그리 비합리적인 처리는 아닐 것입니다.

관형사 vs 용언의 활용형

관형사는 통시적으로 보면 용언 어간과 관형사형 어미의 결합에서 발달한 것으로 보이는 예들이 있습니다. ‘갖은’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중세국어에서 동사 ‘갖-‘은 현대국어의 ‘갖추어지다’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여기에 관형사형 어미 ‘-은’이 붙으면 ‘갖은’이 됩니다. 만약 중세 시기에 활동하는 국어학자가 있다면 ‘갖은’은 동사 ‘갖-‘에 관형사형 어미 ‘-은’ 두 개로 분석하고, 사전에는 이 둘만 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현대로 오면서 동사 ‘갖-‘에 ‘갖추어지다’라는 본래 의미가 사라지고 have의 의미만 남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골고루 다 갖춘’이라는 뜻을 지닌 ‘갖은’이라는 단어가 화석처럼 전해졌죠.

현대 국어 화자들은 이러한 ‘갖은’을 ‘갖추어지다’는 뜻의 동사 ‘갖-‘과 관형사형 어미 ‘-은’을 더 이상 구별해낼 수 없습니다. 현대 국어를 연구하는 국어학자들은 이 때문에 관형사로 사전에 등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이때 ‘갖은’은 조사나 어미가 붙지 않고 활용을 하지 않으며 명사를 수식하는 기능을 갖기 때문에 그 품사는 관형사로 분류되게 됩니다.

‘갖은’ 이외의 비슷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몹쓸, 고얀, 헌, 어떤, 어쩐, 긴긴, 어쩐, 허튼, 괜한, 외딴, 아무런, 오랜, 바른, 지난, 이/그/저런…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헌-헐다’, ‘어떤-어떻다’, ‘아무런-아무렇다’, ‘오랜-오래다’, ‘바른-바르다’, ‘지난-지나다’, ‘이/그/저런-이/그/저렇다’처럼 현대 국어 화자들이 보기에 용언의 기본형이 예상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들을 정말 관형사로 분류해야 하는지, 용언의 관형사형으로 봐야 하는지 판단이 쉽지가 않기는 합니다.

관형사 vs 부사

관형사와 부사를 구분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예문을 보겠습니다.

30일이 지났다.

위 예문에서 ‘꼭’이 수식하는 대상은 ‘30일’이라는 명사입니다. ‘꼭 지났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아 동사를 수식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 예문에서 ‘꼭’은 부사가 아니라 관형사 역할을 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조금도 어김없이’ 등의 의미로 쓰이는 ‘꼭’의 품사는 부사입니다. 그러면 예문에서 ‘꼭’의 품사는 무엇일까요? 이와 관련해 국어학계에서는 통일된 의견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바로’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문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너이다.

위 예문에서 ‘바로’가 수식하는 대상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화자라도 ‘너’라는 명사를 꾸며주는지, ‘너이다’ 서술어를 꾸며주는지 직관적으로 구분해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전자에 해당하는게 분명하다면 이때 ‘바로’는 관형사, 후자라면 부사로 분류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바로’의 품사를 세밀하게 따져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명사(구)로만 해석될 수 있는 통사적 환경을 만들어 봅시다.

바로 너를 만났다.

어떤 분은 위 예시를 보고, ‘너를 바로 만났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위 예시의 문장과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예문은 ‘다른 사람 말고 바로 너’를 만났다는 뜻이 되고, ‘너를 바로 만났다’는 ‘오래 전도 아니고 지금 바로’ 너를 만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예문의 통사적 환경에서 ‘바로’가 큰 무리없이 쓰일 수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문에서의 ‘바로’는 관형사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정도(degree)를 나타내는 부사와 관형사를 구분해 보겠습니다. 다음 예문은 한국어에서 자연스럽습니다.

(A) 그 사람은 아주/매우/꽤 부자이다.

그러면 ‘아주/매우/꽤’는 부사로 분류해야 할까요? 관형사로 분류해야 할까요? 위 예문에서 이들이 ‘부자’를 꾸민다면 관형사, ‘부자이다’라는 서술어를 꾸민다면 부사로 분류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 예문으로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명사(구) 통사환경을 다음과 같이 만들어 봅시다.

내가 어제 아주 부자를 만났어

내가 어제 *매우 부자를 만났어

내가 어제 *꽤 부자를 만났어

‘아주 부자’는 말이 되지만 ‘매우’와 ‘꽤’는 그렇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역으로 (A) 예시의 ‘매우’와 ‘꽤’는 ‘부자이다’라는 서술어를 수식하는 부사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아울러 ‘아주’는 관형사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아주’ 같은 경우에는 주로 부사로 쓰이나 워낙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체언을 꾸며주는 역할(관형사)까지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통시적인 변화를 겪어서 관형사 역할도 일부 담당하는 부사의 사례로는 ‘오직’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시가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오직 너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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