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서술어의 논항과 자릿수
19 Jul 2017 | syntax
이번 글에서는 한국어 서술어의 논항과 자릿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고려대 정연주 선생님 강의와 ‘한국어문법총론1(구본관 외 지음, 집문당 펴냄)’을 정리하였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절에서 서술어의 중요성
주어+서술어 구조의 구성을 ‘절’이라고 합니다. 절에서 필수적으로 쓰여야 하는 문장성분의 개수와 종류는 서술어의 의미에 따라 정해집니다. 서술어는 자신의 의미에 따라 하나 혹은 여러개의 언어요소들을 요구하고, 그것들로 절의 기본적 뼈대가 결정된다는 이야기죠. 예문을 보겠습니다.
꽃이 피었다.
진이가 책을 샀다.
김 박사는 영호를 사위로 삼았다.
위의 예시와 같이 ‘피다’, ‘사다’, ‘삼다’는 각각 서로 다른 수와 종류의 문장성분을 요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삼다’의 경우 ‘김 박사는’, ‘영호를’, ‘사위로’라는 요소 없이는 완전한 문장을 구성해낼 수가 없게 됩니다. 이는 나중에 설명할 서술어의 자릿수와 관계가 있습니다.
사태와 참여자
사태(state-of-affairs, situation)란 세계에서 일어나거나 성립되는 일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행위(action) : 나는 학교에 간다.
상태(state) : 물이 차다.
상태변화(change of state) : 얼음이 녹는다.
참여자(participant)란 사태에 참여하는 존재를 나타냅니다. 사태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참여자의 수와 역할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사태와 참여자는 비언어적 존재 혹은 개념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서술어와 논항
사태와 참여자에 각각 연관되는 의미론적 개념이 술어와 논항입니다. 서술어(predicate)란 사태의 종류를 나타내는 언어요소입니다. 자신이 나타내는 사태가 필요로 하는 참여자의 수만큼 자신의 의미표상 속에 빈자리(slot)가 있습니다.
논항(argument)이란 서술어가 나타내는 사태에 참여하는 참여자를 나타내는 언여요소입니다. 서술어의 의미표상 속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 서술어가 그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논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문을 보겠습니다.
톰이 제리를 좋아한다.
위 예문의 서술어 동사 ‘좋아하다’가 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좋아하는 행위를 하는 주체, 좋아하는 행위의 대상이 갖추어져야 어떤 사건의 장면이 성립됩니다. 곧 행위의 주체와 대상은 ‘좋아하다’가 의미적으로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고 이를 논항이라고 부릅니다.
서술어의 자릿수
서술어가 꼭 필요로 하는 문장 성분, 즉 논항의 개수를 서술어의 자릿수(valency)라고 합니다. 한국어 서술어의 자릿수는 대개 한 개에서 세 개 사이라고 합니다. 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자리 술어 : (사람이) 죽다, (아기가) 울다, (물이) 끓다, (친구가) 예쁘다
두 자리 술어 : (아기가 밥을) 먹다, (범인이 피해자를) 죽이다, (진이가 연극을) 보다, (물이 얼음이) 되다, (어른이 아이에게) 속다, (진이가 학교에) 다니다, (그림이 실물과) 같다
세 자리 술어 : (진이가 동생에게 선물을) 주다, (진이가 동생에게 선물을) 받다, (아이가 우체통에 편지를) 넣다, (김 선생이 저 아이를 제자로) 삼다
그런데 같은 어휘항목이라도 여러 의미를 가지는 경우(다의어)에는 자릿수 또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진이가 음식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웃 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논항 판별 기준1
그렇다면 문장의 어떤 성분이 해당 서술어의 논항일까요? 문장 필수성분인 논항과 논항이 아닌 부가성분을 가려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다음 예문에서 강조표시된 서술어의 논항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가) 나의 집은 무서울 만큼 조용했다.
(나) 진리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첫번째 논항 판별 기준은 모국어 화자의 ‘직관’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특정 문장성분을 빼도 문장이 성립하는지 따져보는 것입니다. 우선 (가)의 ‘조용하다’는 한 자리 술어인 것 같습니다. ‘나의 집은 조용했다’도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조용하다’의 논항은 ‘(나의)집은’이 됩니다.
(나)의 ‘아니다’는 두 자리 술어인 것 같습니다. ‘진리는 아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표현에 뭔가 부족한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니다’의 논항은 ‘진리는’과 ‘(시대에 따라)변하는 것이’가 됩니다. 하지만 직관에 의존한 논항 판별 기준은 판단하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고, 모호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논항 판별 기준2
두번째 판별 기준은 다음 예문과 같이 ‘반문 테스트’를 해보는 것입니다. (이정민, 남승호, 강범모 1998)
A: 존이 떠났어.
B : 아, 그랬어? ?{그런데 어디에서?}
C : 아, 그랬어? 그런데 어디로?
위와 같은 발화상황에서 청자가 ‘아, 그랬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화자 A의 단언에 대해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데 청자가 논항에 대해 반문한다면 그 발화는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화자 A의 단언을 수긍했다는 것은 이미 그 단언이 당연히 함의하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충분히 전달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시 기준으로 설명하면 ‘존이 떠났다’는 걸 수긍한 B가 다시 ‘어디에서 떠났느냐?’고 묻는 것은 어색합니다. 다시 말해 B가 A의 단언을 인정했다는 것은, 구체적인 발화상황 속에서는 ‘어딘가에서’가 생략됐지만,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떠났다’는 전체 정보를 이미 수긍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B도 이미 알고 있다고 판단되는 정보인 ‘어딘가에서’를 다시 반문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 반문테스트에서는 ‘어딘가에서’가 ‘떠나다’의 논항이 됩니다.
C의 경우 발화가 자연스럽습니다. 한국어 화자라면 ‘존이 떠났다’는 걸 수긍하더라도 충분히 궁금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꿔 말해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떠났다’는 전체 정보를 이미 수긍했더라도, ‘어디로’는 다시 물어봄직한 추가적인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 반문테스트에서는 ‘어디로’는 ‘떠나다’의 논항이 아닙니다.
논항 판별 기준3
세번째 판별 기준은 논항인지, 아닌지 잘 구별되는 통사적 환경을 일부러 만들어서 해당 성분이 논항인지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아이가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에서 ‘먹다’의 논항이 무엇인지 살피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억지로 만들어 봅니다.
(A) 아이가 젓가락으로 먹는 것은 {밥이다, *밥을이다}.
(B) 아이가 밥을 먹는 것은 {*젓가락이다, 젓가락으로이다}.
논항은 서술어의 필수성분입니다. 서술어로부터 의미적인 자격이나 문법적인 자격이 예측될 수 있으므로 격조사 없이도 그 자격이 명확합니다. (A)에서 ‘밥을이다’가 비문이 되는 건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따라서 세번째 판별 기준에 의하면 ‘밥’은 ‘먹다’의 논항이 됩니다.
반면 논항이 아닌 경우에는 해당 성분이 서술어가 요구하는 필수 성분이 아니므로, 서술어로부터 해당 요소의 자격을 예측해낼 수 없습니다. (B)에서 ‘젓가락이다’가 비문이 되는 건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기준에 의하면 ‘젓가락’은 ‘먹다’의 논항이 아닙니다.
온논항과 반논항
논항은 용언의 의미를 성립시키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상황 맥락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문장에서 통사적으로도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논항이 통사적으로 나타났을 경우 보충어(complement)라고 합니다. 한국어에서 보충어는 일반적으로 격조사와 결합되어 실현됩니다.
그러나 어떤 논항은 중요성이 낮아서 보충어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통사적으로 나타난 논항을 온논항(온전히 나타난 논항)이라 하고, 논항이기는 하지만 통사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논항을 반논항이라고 합니다. 예문을 보겠습니다.
(가) 나는 (집에서) 학교로 갔다.
(나) 그는 이 물건을 나에게 (3만 원에) 팔았다.
(가)에서 ‘가다’라는 동사의 의미는 행위의 주체가 어떤 지점에서 어떤 지점까지 공간 이동을 하였을 때 성립합니다. 그러므로 떠나는 지점(집에서)도 논항에 해당하는 겁니다.
(나)에서 ‘팔다’라는 행위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 개념이 없으면 ‘주다’의 의미와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의 ‘집에서’와 (나)의 ‘3만 원에’는 통사적으로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논항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상황이 실제 세계에서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화자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정보는 논항이라고 하더라도 반논항이라는 겁니다.
아래 예시의 강조 표시는 언제나 온논항에 해당하는 필수 부사어입니다.
(ㄱ) 민들레는 씀바귀와 비슷하다.
(ㄴ) 아내가 귀엽게 군다.
(ㄷ) 철수는 밥을 먹어 버렸다.
논항, 핵어, 보충어
논항이 보충어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모든 보충어의 개념이 논항과 연관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를 한번 보겠습니다.
(1) 논항은 핵어의 의미적 구현에 꼭 필요한 의미적 요소이다.
(2) 보충어는 핵어의 통사적 구현에 꼭 필요한 통사적 요소이다.
(3) 핵어(head)란 어떤 구성의 핵심적 요소이다. 예컨대 명사구(NP)의 핵어는 명사(N)이고 동사구(VP)의 핵어는 동사(V)이다.
가령 조사는 그 앞에 반드시 명사구가 결합되기를 통사적으로 요구합니다. 이때 조사 앞의 명사구는 조사의 보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명사구가 조사의 논항은 아닙니다. 논항은 사태(사건+상태) 성립에 필요한 의미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의존 명사 앞의 관형어도 명사구의 핵어가 의존 명사일 경우 그것이 통사적으로 구현되는 데에 꼭 필요한 통사적 요소이므로 보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어 서술어의 논항과 자릿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고려대 정연주 선생님 강의와 ‘한국어문법총론1(구본관 외 지음, 집문당 펴냄)’을 정리하였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절에서 서술어의 중요성
주어+서술어 구조의 구성을 ‘절’이라고 합니다. 절에서 필수적으로 쓰여야 하는 문장성분의 개수와 종류는 서술어의 의미에 따라 정해집니다. 서술어는 자신의 의미에 따라 하나 혹은 여러개의 언어요소들을 요구하고, 그것들로 절의 기본적 뼈대가 결정된다는 이야기죠. 예문을 보겠습니다.
꽃이 피었다.
진이가 책을 샀다.
김 박사는 영호를 사위로 삼았다.
위의 예시와 같이 ‘피다’, ‘사다’, ‘삼다’는 각각 서로 다른 수와 종류의 문장성분을 요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삼다’의 경우 ‘김 박사는’, ‘영호를’, ‘사위로’라는 요소 없이는 완전한 문장을 구성해낼 수가 없게 됩니다. 이는 나중에 설명할 서술어의 자릿수와 관계가 있습니다.
사태와 참여자
사태(state-of-affairs, situation)란 세계에서 일어나거나 성립되는 일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행위(action) : 나는 학교에 간다.
상태(state) : 물이 차다.
상태변화(change of state) : 얼음이 녹는다.
참여자(participant)란 사태에 참여하는 존재를 나타냅니다. 사태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참여자의 수와 역할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사태와 참여자는 비언어적 존재 혹은 개념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서술어와 논항
사태와 참여자에 각각 연관되는 의미론적 개념이 술어와 논항입니다. 서술어(predicate)란 사태의 종류를 나타내는 언어요소입니다. 자신이 나타내는 사태가 필요로 하는 참여자의 수만큼 자신의 의미표상 속에 빈자리(slot)가 있습니다.
논항(argument)이란 서술어가 나타내는 사태에 참여하는 참여자를 나타내는 언여요소입니다. 서술어의 의미표상 속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 서술어가 그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논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문을 보겠습니다.
톰이 제리를 좋아한다.
위 예문의 서술어 동사 ‘좋아하다’가 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좋아하는 행위를 하는 주체, 좋아하는 행위의 대상이 갖추어져야 어떤 사건의 장면이 성립됩니다. 곧 행위의 주체와 대상은 ‘좋아하다’가 의미적으로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고 이를 논항이라고 부릅니다.
서술어의 자릿수
서술어가 꼭 필요로 하는 문장 성분, 즉 논항의 개수를 서술어의 자릿수(valency)라고 합니다. 한국어 서술어의 자릿수는 대개 한 개에서 세 개 사이라고 합니다. 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자리 술어 : (사람이) 죽다, (아기가) 울다, (물이) 끓다, (친구가) 예쁘다
두 자리 술어 : (아기가 밥을) 먹다, (범인이 피해자를) 죽이다, (진이가 연극을) 보다, (물이 얼음이) 되다, (어른이 아이에게) 속다, (진이가 학교에) 다니다, (그림이 실물과) 같다
세 자리 술어 : (진이가 동생에게 선물을) 주다, (진이가 동생에게 선물을) 받다, (아이가 우체통에 편지를) 넣다, (김 선생이 저 아이를 제자로) 삼다
그런데 같은 어휘항목이라도 여러 의미를 가지는 경우(다의어)에는 자릿수 또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진이가 음식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웃 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논항 판별 기준1
그렇다면 문장의 어떤 성분이 해당 서술어의 논항일까요? 문장 필수성분인 논항과 논항이 아닌 부가성분을 가려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다음 예문에서 강조표시된 서술어의 논항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가) 나의 집은 무서울 만큼 조용했다.
(나) 진리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첫번째 논항 판별 기준은 모국어 화자의 ‘직관’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특정 문장성분을 빼도 문장이 성립하는지 따져보는 것입니다. 우선 (가)의 ‘조용하다’는 한 자리 술어인 것 같습니다. ‘나의 집은 조용했다’도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조용하다’의 논항은 ‘(나의)집은’이 됩니다.
(나)의 ‘아니다’는 두 자리 술어인 것 같습니다. ‘진리는 아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표현에 뭔가 부족한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니다’의 논항은 ‘진리는’과 ‘(시대에 따라)변하는 것이’가 됩니다. 하지만 직관에 의존한 논항 판별 기준은 판단하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고, 모호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논항 판별 기준2
두번째 판별 기준은 다음 예문과 같이 ‘반문 테스트’를 해보는 것입니다. (이정민, 남승호, 강범모 1998)
A: 존이 떠났어.
B : 아, 그랬어? ?{그런데 어디에서?}
C : 아, 그랬어? 그런데 어디로?
위와 같은 발화상황에서 청자가 ‘아, 그랬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화자 A의 단언에 대해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데 청자가 논항에 대해 반문한다면 그 발화는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화자 A의 단언을 수긍했다는 것은 이미 그 단언이 당연히 함의하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충분히 전달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시 기준으로 설명하면 ‘존이 떠났다’는 걸 수긍한 B가 다시 ‘어디에서 떠났느냐?’고 묻는 것은 어색합니다. 다시 말해 B가 A의 단언을 인정했다는 것은, 구체적인 발화상황 속에서는 ‘어딘가에서’가 생략됐지만,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떠났다’는 전체 정보를 이미 수긍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B도 이미 알고 있다고 판단되는 정보인 ‘어딘가에서’를 다시 반문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 반문테스트에서는 ‘어딘가에서’가 ‘떠나다’의 논항이 됩니다.
C의 경우 발화가 자연스럽습니다. 한국어 화자라면 ‘존이 떠났다’는 걸 수긍하더라도 충분히 궁금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꿔 말해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떠났다’는 전체 정보를 이미 수긍했더라도, ‘어디로’는 다시 물어봄직한 추가적인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 반문테스트에서는 ‘어디로’는 ‘떠나다’의 논항이 아닙니다.
논항 판별 기준3
세번째 판별 기준은 논항인지, 아닌지 잘 구별되는 통사적 환경을 일부러 만들어서 해당 성분이 논항인지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아이가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에서 ‘먹다’의 논항이 무엇인지 살피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억지로 만들어 봅니다.
(A) 아이가 젓가락으로 먹는 것은 {밥이다, *밥을이다}.
(B) 아이가 밥을 먹는 것은 {*젓가락이다, 젓가락으로이다}.
논항은 서술어의 필수성분입니다. 서술어로부터 의미적인 자격이나 문법적인 자격이 예측될 수 있으므로 격조사 없이도 그 자격이 명확합니다. (A)에서 ‘밥을이다’가 비문이 되는 건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따라서 세번째 판별 기준에 의하면 ‘밥’은 ‘먹다’의 논항이 됩니다.
반면 논항이 아닌 경우에는 해당 성분이 서술어가 요구하는 필수 성분이 아니므로, 서술어로부터 해당 요소의 자격을 예측해낼 수 없습니다. (B)에서 ‘젓가락이다’가 비문이 되는 건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기준에 의하면 ‘젓가락’은 ‘먹다’의 논항이 아닙니다.
온논항과 반논항
논항은 용언의 의미를 성립시키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상황 맥락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문장에서 통사적으로도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논항이 통사적으로 나타났을 경우 보충어(complement)라고 합니다. 한국어에서 보충어는 일반적으로 격조사와 결합되어 실현됩니다.
그러나 어떤 논항은 중요성이 낮아서 보충어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통사적으로 나타난 논항을 온논항(온전히 나타난 논항)이라 하고, 논항이기는 하지만 통사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논항을 반논항이라고 합니다. 예문을 보겠습니다.
(가) 나는 (집에서) 학교로 갔다.
(나) 그는 이 물건을 나에게 (3만 원에) 팔았다.
(가)에서 ‘가다’라는 동사의 의미는 행위의 주체가 어떤 지점에서 어떤 지점까지 공간 이동을 하였을 때 성립합니다. 그러므로 떠나는 지점(집에서)도 논항에 해당하는 겁니다.
(나)에서 ‘팔다’라는 행위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 개념이 없으면 ‘주다’의 의미와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의 ‘집에서’와 (나)의 ‘3만 원에’는 통사적으로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논항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상황이 실제 세계에서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화자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정보는 논항이라고 하더라도 반논항이라는 겁니다.
아래 예시의 강조 표시는 언제나 온논항에 해당하는 필수 부사어입니다.
(ㄱ) 민들레는 씀바귀와 비슷하다.
(ㄴ) 아내가 귀엽게 군다.
(ㄷ) 철수는 밥을 먹어 버렸다.
논항, 핵어, 보충어
논항이 보충어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모든 보충어의 개념이 논항과 연관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를 한번 보겠습니다.
(1) 논항은 핵어의 의미적 구현에 꼭 필요한 의미적 요소이다.
(2) 보충어는 핵어의 통사적 구현에 꼭 필요한 통사적 요소이다.
(3) 핵어(head)란 어떤 구성의 핵심적 요소이다. 예컨대 명사구(NP)의 핵어는 명사(N)이고 동사구(VP)의 핵어는 동사(V)이다.
가령 조사는 그 앞에 반드시 명사구가 결합되기를 통사적으로 요구합니다. 이때 조사 앞의 명사구는 조사의 보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명사구가 조사의 논항은 아닙니다. 논항은 사태(사건+상태) 성립에 필요한 의미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의존 명사 앞의 관형어도 명사구의 핵어가 의존 명사일 경우 그것이 통사적으로 구현되는 데에 꼭 필요한 통사적 요소이므로 보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