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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문법적 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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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양태(modality) 개념과 한국어에서 양태가 문법적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글 역시 고려대 정연주 선생님 강의를 정리했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개념

양태란 절이나 문장이 나타내는 명제 혹은 사태에 대한 주관적 태도, 판단을 나타내는 의미 범주입니다. 예컨대 다음 문장과 같습니다. 양태는 단일 어미로 실현될 수도, 어미 등 여러 형태소가 함께 쓰여(우언적 구성) 실현될 수도, 부사/용언 등 단일 어휘로도 실현될 수도 있습니다.

  • 한라산 설경이 아름다워.
  • 비교적 확실한 추측 : 한라산 설경이 아름답다, 한라산 설경이 아름다울 것이 확실하다
  • 가능성 : 한라산 설경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아마도 한라산 설경이 아름다울 거야

양태가 화자의 주관적 태도/판단을 나타내는 의미 범주라면 서법(mood)은 문법 범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양태적 의미가 어미 등 문법적 장치를 통해 나타내면 서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예문의 경우 -겠-, -을 수 있- 같은 구성이 서법, 추측 혹은 가능성에 해당하는 의미가 양태입니다. 확실하다, 아마도와 같이 양태 의미를 드러내는 어휘를 양태어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유형

양태에는 크게 인식양태, 당위양태, 동적양태, 감정양태 등 네 가지로 하위 유형이 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인식양태

인식양태(epstemic modality)란 명제의 확실성에 대한 화자의 판단, 믿음의 정도를 나타냅니다. 문장에 표현된 명제가 확실하게 참이라든지(확실성), 확실하지는 않지만 참일 확률이 제법 높다든지(추측), 거짓일 확률보다는 참일 확률이 높다든지(개연성), 참일 확률이 0보다는 높다든지(가능성) 등을 나타냅니다. 인식양태 각각의 종류에 해당하는 한국어 문법 요소와 그 예시는 다음 표와 같습니다.

문법요소 양태 의미 예문
-겠-, -을 것이- 추측 내일 비가 오겠다, 내일 비가 올 것이다
-ㄴ/ㄹ 듯하- 강한 개연성/추측 진이가 서울에 있는 듯하다
-ㄴ/ㄹ 것 같- 강한 개연성/추측 곧 비가 올 것 같다
-을 법하- 약한 개연성 그건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을 수 있- 가능성 내일 비가 올 수도 있다

당위양태

당위양태(deontic modality)란 사태의 바람직함에 대한 화자의 판단을 나타냅니다. 의무, 허락/허용 등이 있습니다.

  • 의무(-어야 하-) : 이제 집에 가야 한다.
  • 허락(-어도 되-) : 이제 집에 가도 된다.

동적양태

동적양태(dynamic modality)란 사태의 발생 가능성을 좌우하는 원인이 사태 내부의 참여자에게 있음을 나타냅니다. 능력, 의도, 바람 등이 있습니다.

  • 능력(-을 수 있-) : 진이는 수영을 할 수 있다.
  • 능력(-을 줄 알-) : 진이는 수영을 할 줄 안다.
  • 의도(-겠-) : 나는 꼭 1등을 하어.
  • 의도(-을 것이-) : 나는 꼭 1등을 할 것이다.

감정양태

감정양태(emotive modality)란 명제에 대한 화자의 감정적 태도를 나타냅니다. 놀라움, 유감스러움, 아쉬움, 후회, 다행으로 여김, 두려움, 경계심 등이 있습니다.

  • 경계심/경고(-을라) : 조심해. 다칠라.
  • 후회(-을걸) :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날걸.

한국어에서는 다양한 조사와 어미로 다양한 감정을 표시할 수 있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손자 녀석이 축구는 자기가 반에서 제일 {잘한대/잘한다나}.
  • 공부도 좀 쉬어 가며 {해라/하렴/하려무나}.
  • 그이는 매번 무슨 회의가 {있다고/있답시고} 일요일에도 나가요.
  • 너는 여기서 {삼각김밥을/삼각김밥이나} 먹어라.
  • 이 나이에 고물 자동차나 끌고 다니니 {한심합니다/*다행입니다}.
  • 이 나이에 고물 자동차나마 끌고 다니니 {*한심합니다/다행입니다}.

위 예문에서 -ㄴ다나는 가벼운 경멸, -ㄴ답시고는 비아냥, -이나, -나, -나마는 앞선 말이 하찮음을 나타냅니다. 다만 -나는 부정적인 감정, -나마는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면서 그 의미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증거성

증거성(evidentiality)이란 문장에 표현된 명제, 정보를 어떠한 경로를 통해 입수했는가를 나타내는 문법 범주입니다. 가령 문장에 표현된 사실을 자신이 직접 감각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는지, 남으로부터 전해 들었는지, 어떤 증거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이 직접 추리한 것인지 등을 나타냅니다. 다음 예문을 보겠습니다.

He must have be in his office.

위 문장은 한국어로 ‘그는 사무실에 있음이 틀림없다’ 정도로 번역됩니다. 위 문장은 명제가 얼마나 확실한지(인식양태)는 물론, 해당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증거성) 또한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위 명제는 화자가 여러 사실들을 바탕으로 추리해 도출한 것이며, 그 결과가 거의 사실에 가까울 정도로 확실하다고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언어에서 증거성은 이처럼 양태와 동시에 실현되는 경우가 많아서 증거성을 양태의 하위 범주로 다루는 문법 학자들도 많습니다. 증거의 종류는 다음과 같이 6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시지각 (visual perception)
  • 시각 이외의 지각 (non-visual perception)
  • 내적 사유, 성찰 (introspection, endophoric reflection)
  • 지각 증거를 바탕으로 한 추리 (inference based on perceptual evidence)
  • 일반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추론 (reasoning based on general assumption, presumptive, assumptive)
  • 전문(傳聞, hearsay, quotative)

의외성

의외성(mirativity)이란 문장에 표현된 명제가 화자의 지식 체계에 아직 내면화하지 못한 지식임을 나타내는 문법범주입니다. 한국어에서는 -네, -구나 의미의 핵심이 의외성입니다. 예컨대 다음 예문의 화자는 청자가 집에 이미 갔을 것으로 인식 혹은 기대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의미로 -네-구나를 쓰고 있습니다.

  • 아직 집에 {안 갔네/안 갔구나}.

한국어의 문법적 양태

이상 살펴본 여러 가지 개념을 바탕으로 한국어의 문법적 양태를 -겠-, -을 것이-, -더-를 중심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세계 여느 언어와 마찬가지로 한국어에서도 하나의 문법 요소에 시제, , 양태, 증거성, 의외성 중 둘 이상의 범주에 걸쳐서 복수의 의미 성분을 한꺼번에 가지는 일이 종종 있는데요. 이 세 가지 문법 요소가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겠-

-겠-은 ‘추측’이라는 인식 양태의 의미 성분과 ‘추리(지각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명제 도출)’라는 증거성의 의미 성분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추측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지금 밖에는 비가 오다.

의문문에서는 청자의 판단(추측)을 묻는 데 이용됩니다.

  • 네 생각에는 비가 곧 그치니?

추측의 -겠-은 여러 시제에 사용될 수 있고 주어 제약도 없습니다.

  • 어제는 비가 왔다 / 곧 비가 오
  • 이러다가 내가 밥을 못 먹다 / 이러다가 네가 밥을 못 먹

의도

의도의 -겠-은 화자 자신을 동작주로 하는 사태를 성립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나는 그 사람과 결혼하다.

의문문에서는 청자의 의도를 표현하는 데 쓰입니다.

  • 너는 그 사람과 결혼하느냐?

평서문에서는 1인칭 주어만을, 의문문에서는 2인칭 주어만을 취할 수 있습니다.

  • {나는, *너는, *철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과 결혼하다.
  • {*나는, 너는, *철수는} 그 사람과 결혼하느냐?

하지만 1인칭 주어 평서문에서 -겠-이 쓰였다고 해서 모두 의도로 해석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예문은 추측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 내가 오늘 아무래도 학교에 가게 되다.

의도의 -겠-은 과거 시제와 결합할 수 없습니다.

  • 나는 꼭 대통령이 되었다.

계획된 미래

명제 내용이 표상하는 사태가 가까운 미래에 발생함을 의미하되, 그 발생이 계획되어 있음을 함의합니다. 이미 정해진 것으로 불확실한 사실에 대한 추측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와 관련해 중세 국어의 -게 하여 잇-에서 현대 국어의 -겠-으로 변화, 발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의미(-하게 되어 있-)가 일부 문맥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겠-이 계획된 미래로 쓰인 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통령께서 입장하시습니다.

기동상

어떤 상태에 막 접어들었음을 표현합니다. 이 역시 -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의미(-게 되었-)가 일부 문맥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다음 예문의 -겠-은 ‘아는 상태에 막 접어들었음’을 나타냅니다.

  • 내일까지 과제를 제출하셔야 합니다. 예, 알습니다.

그렇다면 ‘알겠다’는 표현과 ‘알았다’는 표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모국어 화자가 느끼기에 둘 사이에 큰 의미 차이를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자의 -겠-은 ‘아는 상태에 막 접어들었음’을, 후자의 -았-은 ‘깨달은 상태 결과가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깨닫다’ 정도 의미의 ‘알다’는 끝점을 가지는 유계동사인데, 결과상을 나타내는 -았-이 쓰여 과거 사태의 결과가 지속되는 의미를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더-

-더-는 상황을 지각한 시간이 발화시 이전이라는 ‘과거’의 의미 성분, 이 정보를 지각/내성/추리를 통해 얻었다는 ‘증거성’의 의미성분, 문장의 표현된 사태가 새로운 정보라는 ‘의외성’의 의미 성분이 결합돼 있습니다. 여기서 -더-는 한국어 주절(모절)에서 쓰이는 것으로 관형사절의 ‘-더-‘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각, 내성, 추리

-더-는 직접적인 감각 행위 및 내성, 추리(근거가 분명할 때)를 통해 알게 된 사태에 대해 사용됩니다. 다음 예문과 같이 직접 지각한 행위에 어울립니다.

  • 철수가 운동장에서 체조를 하라.

그러나 다음 예문처럼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 것에 -더-를 쓰면 비문이 됩니다(증거성 제약).

  •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새로 나온 석류 음료가 맛있라.

내성, 추리에 쓰인 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어제 너와 얘기할 때는 몰랐는데,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계산이 틀렸라 : 내성
  • 선생님은 벌써 퇴근하셨라 : 추리(교무실의 선생님 책상이 비어있는 걸 보고)

과거

-더-가 나타내는 과거의 의미 성분은 시제와는 약간 다른 개념입니다. 상황을 지각한 시간이 발화시를 기준으로 했을 때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이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다음 예문의 경우 실제 사태는 미래 어느 시점에 일어나지만, 해당 사태를 인식한 시점이 과거라는 걸 나타내고 있습니다.

  • 내일부터 고속버스 요금이 오르라.
  • 강아지가 집을 잘 지키겠라.

의외성

지각의 시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때까지는 알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던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을 때 -더-가 사용됩니다.

  • 그 사람 알고 보니 영 사람이 덜 되었라.
  •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이라.

인칭제약

더-는 인칭제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객관술어가 쓰인 평서문에서는 1인칭 주어와 -더-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객관술어란 ‘뛰다’, ‘먹다’처럼 해당 술어가 가리키는 사태가 외부에서 관찰 가능한 경우를 가리킵니다. 예문과 같습니다.

  • *는 옷을 입라.
  • *나는 동생을 찾라.

객관술어가 쓰인 의문문에서는 2인칭 주어와 -더-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 *네가 밥을 먹냐?

하지만 이러한 제약이 해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문과 같습니다.

  • 내가 빨간 옷을 입었라. (정신 없이 아무 옷이나 입고 나오느라고 그때까지 깨닫지 못했는데, 자기가 빨간 옷을 입었음을 새로이 깨닫게 된 상황)
  • 세 사람 중에서 내가 제일 춤을 잘 추라. (이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춤을 같이 춰보니 내가 춤을 제일 잘 춘다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게 된 상황)

이처럼 자신의 일이라도 새로 깨닫게 된 사태에는 -더-가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칭 제약의 해소는 ‘의외성’의 의미 속성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꿔 말해 객관술어가 쓰인 평서문의 1인칭 인칭제약은 화자가 자신의 일을 새로이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엔 주관술어 쪽을 보겠습니다. 주관술어란 ‘춥다’, ‘무섭다’처럼 해당 술어가 가리키는 사태가 감정, 감각 등과 관련된 경우를 가리킵니다. 주관술어가 쓰인 평서문에서 1인칭 주어와 -더-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2/3인칭 주어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관술어가 쓰인 의문문에서는 2인칭 주어와 -더-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1/3인칭 주어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음 예문과 같습니다.

  • 나는 수박이 좋라. 나는 간밤에 춥라.
  • *어젯밤엔 바람이 불어서 진이가라.

생리적 혹은 심리적 현상에 대해 우리는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과 관련한 사실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화자의 의식의 표면에 떠오름(의외성)을 표현하기 때문에 주관술어가 쓰인 1인칭 평서문에서 -더-가 자연스럽게 쓰일 수 있습니다. 반면 타인의 내적, 심리적 경험은 지각이나 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없고, 추리를 통해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주관술어가 쓰인 2/3인칭 평서문에서 -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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